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언제는 팥죽 한 그릇이 '명분'보다 중요한 것처럼..."
"언제는 팥죽 한 그릇이 '명분'보다 중요한 것처럼..."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6.03.26 13:2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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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지지자 '명분', 후보자 '명분', 그리고 유권자의 '명분'

"평소에는 먹고 살기도 바쁘다고 아우성인 사람들이, 그래도 선거 때가 되니 마음이 달라지는 모양이죠."

주말, 차량이 왜 정체돼 있는가를 유심히 살피던 한 택시 운전기사가 도로변에 사람들이 대거 몰려있는 모습을 보고 내뱉은 말이다. 차창 너머에는 한 제주도의회 의원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선거사무실 현판식이 열리고 있었다. 빼곡히 건물 주변에 몰려들어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는 지지자들. 그리고 '명분'을 역설하는 후보자.

체감적으로 느끼는 세(勢)가 강한 후보건, 약한 후보건 선거사무실 현판식과 개소식이 초라한 이벤트는 없었다. '팥죽 한 그릇과 장자의 명분' 처럼, 생업에 바쁘다는 사람들도 이 시기가 되니 생업보다 '박수'가 더욱 큰 가치를 갖게 하는 모습이다.

 

#시대 변하고, 선거문화 달라졌다지만, 학연.지연.혈연 찾기는 여전

어느 후보자 행사를 어깨 너머로 살펴봐도, 선거캠프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평소 그토록 힐난하고 성토했던 '정치'가 어디 있었느냐는 듯,  지지하고 고양시키는 분위기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명분(名分)'이라고 한다면, 이들 지지자들에게도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명분은 있다. 또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후보자 행사에 참가해 '출석 체크'를 받아야 하는 명분 또한 있다.

나와 같은 동향사람이니까, 같은 학교 선후배니까, 먼 친척벌 되는 사람이니까, 사회적 인연으로 도움을 건넬 수밖에 없는 사이니까.

명분은 천차만별이다. 평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활동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고 비토해 왔던 사람들조차 이 시기가 되니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또 연결돼 '어쩔 수 없는 발걸음'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계속된 경기침체로 정치문제만 나왔다 하면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더 시급하다며 손사래부터 치던 사람들도 마지못한 발걸음을 하게 된다.  언제는 '명분보다 팥죽 한 그릇이 더 중요한 것처럼 떠들어대던 사람들까지....

시대가 바뀌고, 선거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혈연, 지역, 학연 등을 중심으로 한 후보자 선별기준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동소이한 후보자 명분 또한 가관

다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권자들의 이러한 보편적 '특정후보 지지 명분'과 더불어 후 후보자들의 '명분' 또한 가히 볼만하다.

자신이 도지사가 되어야 하는 명분, 도의원이 되어야 하는 명분, 교육의원이 되어야 하는 명분, 그 '명분'없이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제주도의원 선거에서 제주시의 한 선거구내 주자들의 출마명분을 보면 이렇다. A 후보는 '도의회 역할 다할 전문성 갖춘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 B후보는 '오랜 경영인 활동 경험 기반 경제 활성화 일익 담당', C후보는 '오랜 사회경험.정당생활 바탕으로 발전된 의정활동 구현', D후보는 '"제대로운 의회 역할 수행과 상권 살리기 주역', E후보는 '오랜 경영인 경륜 바탕 국제자유도시 발전 일익 담당'을 각각 명분으로 세웠다.

한 농촌지역 선거구의 후보자들의 명분도 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지역구의 A후보는 '의정활동, 경륜, 추진능력 바탕으로 한차원 높은 의회상 추구', B후보는 '전문성 살린 새로운 특별자치 의회상 구현', C후보는 '농업인 활동 경험 바탕 농업인 목소리 대변', D후보는 '관행적 사고 탈피하고 타성에 물들지 않은 새 인물'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부분 자신이 출신지역 발전을 일굴 능력있는 인물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대동소이한 명분이다. 하지만 같은 명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후보가 되어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다른 경쟁후보 보다 자신이 보다 더 잘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은 '가문의 영광', 겉은 '그럴듯한 명분'...유권자의 '명분' 분명히 해야 할 때

물론 출마 후보들의 경우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가문의 영광'과 '개인의 영광'의 목표가 아니라면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명예' 또는 '가문의 영광'의 성격이 짙으면서도 겉은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경우도 사실 허다하다.

그것을 가리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명분의 허와 실을 정확히 가려 후보자 선정기준을 마련하는 것 또한 유권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명분'이다.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 곧이 듣는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위험에서 벗어나,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후보자 선택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 이것이 유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표(標) 명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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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꾼 2006-04-15 19:59:34
누굴 찍어도 그놈이 그놈.. 내세우는 명분들은 정말 식상하기 이를 데 없고.. 차라리 '내가 당선되면 매일아침 동네청소 깨끗히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놈이 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마디 지지 2006-03-30 01:08:46
냉무

한마디 2006-03-26 13:49:21
나도 출마 안하는 명분있다.
왜.
내가 출마하면 정치문화 더 퇴보할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