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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년 하논의 신비를 찾아
3만년 하논의 신비를 찾아
  • 고희범
  • 승인 2011.02.17 09: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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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8회 제주탐방 후기

탐방 당일 아침 날씨가 심상치 않다. 바람과 함께 갑자기 내리는 눈이 만만치 않아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정도다. 출발지점인 종합운동장 소방서 앞으로 가는 연북로는 빙판이 돼 있다. 서귀포에서 합류하기로 한 인원까지 합쳐 신청자가 64명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오기로 한 신청자들이 취소 연락을 해왔다. 눈보라에도 아랑곳 없이 시간에 맞춰 참석한 이들과 함께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시 호근동과 서호동에 걸쳐 있는 하논. 버스에서 내려 입구쪽으로 20여m를 걸어가자 숲으로 둘러싸인 광대한 분화구가 눈 앞에 펼쳐진다. 분화구라기 보다는 드넓은 평원이거나, 분지에 조성된 대규모 논의 모습 그대로였다. 추수를 마치고 겨울을 맞은 하논은 아침에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3만년에 걸친 기후와 식생의 변화 기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생태박물관 하논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마르(maar)형 분화구 하논은 '큰 논'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답게 동서로 1.8km 남북으로 1.3km의 규모로, 바닥면적만 21만6천평에 이르는 대형 분화구이다. 분화구 가장자리는 빙 둘러 계단식 감귤밭이 들어서 있다. 동남쪽에는 수십채의 주택과 창고,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있고, 개 사육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블록 담벽 뒤에서는 대형 개들이 짖는 소리만 우렁차다.
 
이곳이 국내 유일의 대규모 마르형 분화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지난 2002년 전지훈련용 야구장으로 개발하려 했다는 야심찬 계획이 그럴 듯해 보였을 것이다. 잔디로 뒤덮여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야구장들이 들어선다면 겨울철 전지훈련을 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곳이다. 서귀포 일대 숙박업소와 음식점, 관련 업계는 물론, 이 지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마그마가 물과 만나면서 폭발하는 경우를 수성화산이라고 부른다. 기름을 둘러 달궈진 프라이팬에 물을 부으면 마치 폭발하듯 기름이 튀는 것처럼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수와 만나면서 폭발한 화산이다. 이때는 강한 폭발력과 함께 화산재가 분출해 주변을 뒤덮는다. 백두산이나 일본의 후지산,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스비오 화산 등이 대표적이다. 제주도에서는 송악산, 일출봉, 수월봉 등이 있다. 반면 제주도나 하와이 처럼 물이 너무 많은 바닷속이거나 물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폭발력이 크지 않은 상태로 용암이 분출된다.
 
화산폭발과 함께 분출된 화산재(灰, 회)가 굳으면서(凝, 응) 이루어진 분화구의 형태에 따라 다른 이름들이 붙는다. 응회환, 응회구, 마르 등이 그것이다. 응회환은 분화구 주변의 경사면이 완만한 것으로 송악산이나 수월봉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출봉 처럼 경사면이 급한 것은 응회구라고 부른다.
 
마르형은 분화구 주변 경사면이 완만해 응회환과 비슷하지만 분화구 위치가 기반암 보다 아래에 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기반암 보다 아래에 분화구가 있다는 것은 분화구가 오목해서 폭발 이후 물을 가두기 쉬운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하논은 기반암인 현무암층을 뚫고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를 분출했고, 분화구에는 빗물이 고이면서 넓고 깊은 호수가 만들어졌다. 
 
하논은 3만년 이전에 폭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논의 규모로 보아 화산재가 멀리까지 퍼져 날리면서 제주도 전역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분화구에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에는 화구 주변에 쌓여 있던 화산재가 조금씩 호수에 쌓이면서 퇴적층을 만들었다. 여기에 다시 호수 주변의 식물들이 죽거나 식물 뿌리의 작용으로 유기물이 생성돼 화산재와 섞이면서 까만 진흙층을 구성하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적층은 최고 15m, 평균 9~10m나 된다.

 

 

하논의 지표면은 회색 화산재가 오랜 세월 유기물과 섞이면서 검은 진흙층으로 두껍게 덮였다. 

하논 남쪽 가장자리에는 작은 알오름이 하나 있다. 폭발을 일으킨 지하수가 고갈되면서 비폭발적 분출이 이루어져 분화구 안에 화산재가 아닌 송이로 이루어진 오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알오름은 수성화산인 송악산에도 있다.
 
기반암 바로 위 퇴적층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 이 퇴적층이 형성된 시기가 3만년 전으로 확인돼 하논의 화산폭발은 3만년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이 퇴적층의 성분 조사를 통해 3만년 동안 이루어진 이곳 식생의 변화와 기후변화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하논이 갖는 지질학적 가치는 물론, 생태학, 기후학적 가치가 뛰어난 이유다. 
 
그로부터 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분화구 일대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제주도 어디에도 이곳 만큼 논 농사를 짓기 좋은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지표면이 두꺼운 진흙으로 덮여 있어 물이 빠지지 않는 데다 용출수까지 있어 수량도 풍부하다. 주민들은 분화구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 물을 빼고 이곳을 논으로 만들었다.
 
근래 들어서는 주변에 감귤밭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방풍을 위해 삼나무 조림도 이루어졌다. 이곳은 사유지가 18만여평인 데 비해 국유지는 고작 2800여평이 전부다. 이날 탐방에서 해설을 맡은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 전용문 박사는 지난 해 여름 하논을 답사한 독일 불칸 아이텔 마르박물관의 한 연구원이 "기대를 많이 걸고 제주를 방문했으나 원형이 너무 많이 훼손됐다"며 안타까와 했다고 전했다.

 

분화구 가장자리를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감귤밭

이곳 하논에 대한 복원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2년. 서귀포시가 국비 7억원과 지방비 3억원을 확보하고 복원사업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했다. 그러나 토지 소유주들의 강한 반대에다 정부의 사업 타당성 심사에서 ‘국고로 토지매입은 불가하다’는 부적정 판정으로 7억원의 국고 보조비를 반납하게 됐다.

하논 복원 사업 논의가 재점화되면서 지난해 11월 열린 국제심포지움에서 일본 나고야대 히로유키 기타가와 교수는 "하논분화구 안의 최고 15m에 이르는 퇴적층에는 과거 동아시아 지역의 기후변화를 알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독일 포츠담 지구과학센터의 아킴 브라우어 박사는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 기후변화의 자연적인 기록보관소가 필요하다”면서 “이는 마르형 분화구내 호수에 보존돼 있다”고 강조했다.
고기후와 고식생 등 자연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세계적 생태박물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하논. 오는 2012년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 하논 프로젝트가 대표의제로 선정된다면 국가차원에서도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논의 개 사육장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새섬으로 이동했다. 이 섬 서쪽 맞은편 해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95호인 서귀포층 조개화석지대를 둘러보기도 했으나 하논의 거대한 가치에 압도당한 우리는 서귀포층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쉽지 않았다.

 

제주도의 가장 아래 지층인 서귀포층. 지상으로 드러난 서귀포층은 새섬 앞에서만 관찰할 수 있다.

새섬을 한바퀴 돌고 난 뒤 베릿내오름을 올랐다. 천제연 계곡인 베릿내 동쪽의 이 오름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벼루처럼 깎아지른 절벽이라는 뜻으로 벼루의 제주말인 '베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오름 옆으로 은하수 처럼 내가 흐른다고 해 '별이 내리는' 오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깎아지른 베릿내오름의 벼랑 아래로 천제연에서 흘러나온 물이 베릿내를 따라 흐르고 있다.

하논과 새섬, 베릿내오름을 오르는 동안 우리는 이날 아침 겪은 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고는 우리가 서귀포에 들어선 뒤 눈길에 미끌어진 자동차 한대가 우리가 탄 버스와 부딪친 뒤 튕겨져 나가 길 옆 4m 아래 감귤밭에 처박힌 것이었다. 옆으로 쓰러진 자동차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끔찍한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순간 우리 일행들이 길 가 옹벽을 타고 내려가 자동차에 접근했다. 제주소방서에 근무하는 오정희씨가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생존해 있음을 확인한 뒤 몇사람이 달려들어 자동차 문을 열었다. 잠시 후 부부와 초등학생 두 자녀가 모두 제 발로 걸어나왔다. 부인만 다리를 절뚝일 정도의 부상을 입었을 뿐 모두 무사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자동차가 감귤나무 위로 추락한 것도 행운이었지만 뒷자리에 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안전벨트를 메고 있던 덕이었다. 119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일단 사고를 수습하느라 40여분을 지체했다. 버스에서 사고 순간을 고스란히 목격한 일행들은 탐방이 끝나고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 비로소 목격담을 풀어냈다. 끔찍하지만 천만다행이었던 목격담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미디어제주>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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