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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표류기의 시작은 용머리가 아닌 수월봉 일대다”
“하멜 표류기의 시작은 용머리가 아닌 수월봉 일대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1.04.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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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역사 30選] ① 이익태 「지영록」...부록으로 표류 기록 다양하게 기록

역사를 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역사란 무엇인가’다. E.H 카는 이에 대한 답으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가치에 기준을 두지 않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만큼 과거를 버려둔 상태에서 현재의 가치,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을 얘기할 수 없다.
미디어제주는 현재 제주도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예전에 제주 땅을 지켜온 이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기획물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국립제주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을 통해 제주인의 삶을 간접 체험해보자. 국립제주박물관이 꼽은 ‘30선(選)’. 제주인들의 흔적과 현재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조선시대를 시작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편집자주]


 

이익태가 펴년 '지영록'
헨드릭 하멜은 은둔의 땅으로만 알려진 조선을 알린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쓴 표류기는 자신을 감금했던 조선을 알리겠다는 욕망보다는 자신이 네덜란드를 떠나 있던 기간의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하멜은 이 보고서를 동인도회사에 제출해 조선의 억류기간을 포함한 14년간의 급여를 받게 된다.

이렇듯 유럽에 선풍적 인기를 끈 하멜 보고서이지만 그가 표착한 지점이 어딘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멜 일행을 태운 상선 스파르웨르호는 제주근해를 지나다가 난파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지점이 어디인가를 놓고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영록(知瀛錄)」의 가치는 충분하다. 「지영록」은 조선 숙종대인 1694년부터 1696년까지 제주목사를 지낸 이익태(1633~1704)가 펴낸 기록물이다.

「지영록」은 목사 이익태가 부임하기까지의 과정과 제주에 머무는 동안의 일상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특히 「지영록」은 부록으로 삽입된 표류기록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여기에 표착지점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하멜 관련 기록이 나온다. 「지영록」엔 중국인의 표류기가 많으며, 조선인들이 야만인으로 생각한 서양인에 대한 기록은 ‘서양국표인기(西洋國漂人記)’로 기술하고 있다.

기록엔 계사 7월 24일(음력), 즉 효종 때인 1653년 여름 때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헨드리크 얌센 등 64명이 함께 탄 배가 대정현 차귀진 아래 대야수(大也水) 해변에서 부서졌다. 익사자 26명, 병사자 2명, 생존자 36명이었다.”

'지영록'은 하멜 일행의 표착지점을 고산리 일대 '대야수'라고 밝혀주고 있다.(빨간색 테두리)

1653년 음력 7월 24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8월 16일이 된다. 이는 1653년 8월 15일과 16일 새벽 사이에 제주에 표착했다는 하멜 표류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지영록」의 기록에 묘사된 ‘대야수’는 18세기 만들어진 「탐라순력도」에 따르면 고산리의 남쪽 해안으로 표기돼 있다. 고산리 수월봉 남쪽 해안을 ‘대물’이나 ‘큰물’로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 ‘대야수’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사실(史實)은 사실(事實)을 기초로 한다. 있던 일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기록이 말해준다. 하멜이 표착지로 표기한 ‘켈파르트’보다 이익태가 기술한 ‘대야수’가 더 자세하다는 점이 그렇다. 켈파르트는 당시 유럽에서 제주도를 부르는 이름이었고, 「지영록」에서는 더 자세히 고산리 앞바다로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지영록」이 이처럼 가치를 지니게 된 데는 이익태의 후손이 제주도에 자료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2002년엔 국립제주박물관 개관에 맞춰 이익태 후손들이 관련 유물 300여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익태는 「지영록」을 쓰면서 서문을 이렇게 장식하기도 했다.

“제주도의 모든 지역은 바다 가운데서 이름난 지역으로 저 하늘 밖의 웅대한 변방이다.”

옛 사람들이 느끼던 제주도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지영록」은 더욱 값진 평가를 받고 있다.

야계 이익태의 영정

이익태가 제주 목사로 부임을 받은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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