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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은 ‘보석처럼 귀한 천의 얼굴’을 만든 예술가들
제주인은 ‘보석처럼 귀한 천의 얼굴’을 만든 예술가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2.06.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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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역사 30選] <14> 뛰어난 절제미의 최고봉 ‘동자석’

 
천의 얼굴이 있다. 바로 동자석이다. 같은 얼굴이 없으니 천의 얼굴이라 불러도 누가 뭐라 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무덤가에서 동자석을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돼 버렸다.

단순한 선. 대담한 생략. 모든 것의 표현은 얼굴과 손에 집중된다. 그러면서도 동자석은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한다. 마치 그들은 사람을 닮았다. 같은 표정, 같은 몸짓이 없다. 그러니 동자석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을 닮았기에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동자석은 그다지 잘 생긴 얼굴은 없다. 반면 미운 얼굴을 찾기도 힘들다. 곁에 앉고 싶고, 품에 안아 보고픈 그런 모습들이다. 동자석이 사람을 닮은 이유는 있다. 무덤 주위의 한 자리를 차지한 동자석은 무덤 주인을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시대가 사실적인 구상미술의 극치라면, 제주의 동자석은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로 넘어가는 절제와 단순미의 최고봉이다. 비너스상에 비교한다면 동자석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밀로의 비너스보다는, 단순하면서 힘 있는 표현이 뛰어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았다.

동자석은 또 다른 석인(돌사람)이다. 석인은 동자석을 비롯, 문인석·망부석·장승 등으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제주 외의 다른 지역에도 동자석을 빼닮은 석상들이 있으나 제주에서처럼 대규모로 흩어져 나타나지는 않는다. 봉분 주위에 박혀 있는 동자석은 조상을 숭배한다는 의미에서, 혹은 무덤수호자로의 기능을 하기도 하며, 주술 또는 장식적인 기능으로 무덤과 어울려 있다.

어쨌든 무덤의 주인과 함께 하는 동자석은 대부분 묘를 향해 서 있거나 마주보고 있다. 동자석은 잘 다듬어진 석인들과 달리 대담한 생략이 돋보인다. 디테일한 멋은 없으나 소박한 멋이 일품인 무덤에서 피어난 예술작품이다.

동자석은 채 1m가 되지 않지만 130에 이르는 큰 것들도 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얼굴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닮은 얼굴은 없으며, 머리와 손의 표현도 동자석마다 서로 다르다.

관모를 쓴 동자석이 있는가 하면, 어린애 얼굴을 한 것들도 있다. 불룩 튀어나온 눈, 동전만한 크기의 눈, 한 줄로 얇게 처리한 눈, 눈썹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두 겹으로 눈을 도드라지게 만든 동자석도 있다. 그야말로 석공의 손놀림에 따라 동자석은 천의 얼굴로 변신한다.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꽃을 들고 있거나 두 손에 술잔을 부여잡은 손. 거울을 든 뭉툭한 손도 있다. 그러나 손마저 생략하고 얼굴만을 드러내는 동자석도 간혹 눈에 들어온다.

동자석은 이젠 흔한 것이 아니다. 우린 그런 걸 가리켜 문화재라고 부르곤 한다. 그런데 문화재를 보면서 반성할 점이 있다. 바로 흔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없을 때라야 가치를 인정하는 행태들이다. 세계문화유산이 존재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산으로 만들어내는 아이러니 한 세상이다.

동자석도 그런 전철을 밟고 있다. 이젠 무덤에서는 찾기 힘들게 됐고,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으로 전락했다.

우린 동자석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들은 생전 예술가라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으나 남아 있는 동자석에 대해서만큼은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겠다. 제주돌문화공원의 백운철 총괄기획단장은 동자석을 가리켜 보석처럼 귀한 것이라는 말을 기자에게 들려준 기억이 있다. 무덤가에 있으면서 풍상의 세월을 견뎌낸 동자석이야말로 제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기에 그렇다. 민중 조각의 질박한 조형미를 나타낸 동자석이 뛰어난 예술작품임을 다시한번 되새겼으면 한다. 덧붙여 더 이상 뭍으로 반출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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