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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인들은 아주 정교한 화살촉을 만드는 기술자들”
“고산리인들은 아주 정교한 화살촉을 만드는 기술자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2.11.11 13: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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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역사 30選] <16> 우리나라에서 고산리에만 나타나는 화살촉

사진 위쪽 첫째줄이 슴베(자루)가 없는 돌화살촉이며, 나머지는 모두 슴베가 있는 화살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만 유독 슴베가 있는 화살촉이 발견되고 있으며, 육지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의 저자인 마빈 해리스는 요리문화의 차이는 지역마다 다른 인구여건 등 주어진 공간에서의 음식을 얻을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해리스는 인구밀도가 낮고 곡물재배 여건이 좋지 않은 곳은 육식이 발달했다고 한다. 반면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채식 요리법이 발달했다고 쓰고 있다. 이유는 단백질의 양을 줄이지 않고서는 고기를 먹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사시대는 어땠을까. 당시엔 인구밀도가 낮았고, 농경문화라기보다는 채집 생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땅에서 나는 과일을 따 먹던가, 수렵을 통해 단백질을 공급받곤 했다. 해리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당시엔 수렵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을 수 없던 시대였다.

그런 수렵을 하려면 도구가 필요했다. 수렵도구로는 창이 있고 화살이 있다. 구석기시대인들은 창을 수렵의 도구로 주로 썼다면 신석기시대인들은 보다 정교한 활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단백질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활은 돌이나 동물 뼈로 만들어졌다.

신석기시대에 들면서 활의 쓰임이 많아진 건 빙하기가 끝나는 환경 변화와도 맥락을 함께 한다. 환경 변화로 대형동물은 사라지고 신석기시대엔 소형동물로 양상이 바뀌게 된다. 커다란 창을 활용하지 않고, 활을 씀으로써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고산리 유적이다. 고산리에 주거지를 만들어 살던 이들은 아주 정교한 화살촉을 만들어냈다. 우선 이 곳에서 발견된 화살촉의 재료는 고산리 일대의 석질과 다르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고재원 제주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은 고산리 화살촉은 용결응회암이 80%에 달한다. 분석결과 남해안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이 석재는 아주 단단하고, 제주에서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살촉은 암석을 깨뜨려 거기에서 떼어낸 돌을 다듬어서 만들어낸다. 그 돌을 불에 달군 돌이나 동물의 뿔로 눌러 조금씩 떼어 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화살촉은 대개 3내외로, 엄지손톱 2개 정도의 크기가 된다. 완성된 화살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돌을 떼어 낸 흔적이 곳곳에 나 있다. 그 흔적의 크기는 0.5에서 1로 매우 작다. 아주 정교한 작업을 했음을 읽데 된다.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으로 활을 복원한 모습. 왼쪽 원이 슴베가 있는 화살촉이며, 오른쪽 원은 슴베가 없는 화살촉이다.
특히 고산리에서 나오는 화살촉은 우리나라 여느 지방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고산리 화살촉은 삼각형 모양 하단부에 자루가 달려 있다. ‘슴베’(경부:莖部)라고 불리는 이 자루는 대나무 등에 쉽게 끼워서 활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슴베가 있는 화살촉은 우리나라에서는 고산리 외에는 거의 볼 수 없다. 슴베를 만들려면 실패를 각오해야 한다. 고산리 유적에서는 화살촉과 함께 수많은 파편도 함께 출토됐다는 점에서 선사시대인들의 수많은 노력을 알 만하다.

슴베가 있는 화살촉은 우리나라에서는 고산리에서만 유독 등장하지만 이웃인 일본과 러시아 등지에서도 나온다. 일본 연구 결과로는 슴베가 없는 화살촉에서 슴베가 있는 화살촉으로 변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뤄진 화살촉 위력 실험.
실험 결과 10m 거리에서 쏘았을때 원숭이 어깨뼈를 관통하고(사진 위), 두개골에도 꽃히는 위력(사진 아래)를 선보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살촉의 위력은 어땠을까. 일본민속역사박물관이 2009년에 펴낸 죠몽은 언제부터?라는 자료에 따르면 죠몽시대 발굴된 화살촉으로 시험한 결과가 나와 있다. 나무를 끼워 만든 활의 길이는 150정도이며, 비거리는 50m로 초속 80~100의 위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10m의 가까운 거리에서 활을 쏜 결과 원숭이의 어깨뼈를 관통하고, 두개골에도 꽂히는 위력을 보였다. 이 자료에서는 활의 등장을 혁신적이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실험은 정지한 상태에서 이뤄진 한계가 있다. 때문에 아주 근거리에서 가만히 있는 동물을 쏘지 않는 이상 화살촉으로 동물을 단번에 죽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이뤄진 실험은 고산리인들이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신석기시대인임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생긴다. 슴베가 있는 화살촉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고산리 유적에서만 나오는 이유는 뭘까. 슴베가 있는 화살촉은 만드는 데 더 공을 들여야 하고, 그런 노력 덕분에 활을 만들어 사용하기 쉬운 점이 있다. 슴베가 없는 화살촉보다는 가공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세한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산리인들은 뛰어나고, 한반도인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한반도인들은 슴베가 있는 화살촉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직도 발굴되지 않고 땅 속에 묻혀 고고학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화살촉이 한반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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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2-11-12 16:18:15
김기자의 내공을 느끼게 합니다.늘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