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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화’된 토기 제작의 시작, 그건 바로 탐라국 등장을 예고
‘제주화’된 토기 제작의 시작, 그건 바로 탐라국 등장을 예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3.09.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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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역사 30選] <21> 곽지리식토기의 초기형인 ‘삼양동식토기’

삼양동식토기. 이 시기엔 다양한 형태의 제주식 토기가 제작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일정한 형태의 모양을 갖춘 제주형 토기가 자리를 잡게 된다.
고고학은 인류가 남겨놓은 유물, 즉 물질자료를 통해 과거 문화를 연구한다. 그런데 고고학은 예전 인류들의 생활양식을 복원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당시의 문화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분야의 성과도 도입해야 한다. 때문에 고고학은 인문·사회과학분야와는 달리 자연과학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들면서 고고학에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유물 가운데 토기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을 도입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토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기술발달과정의 파악이며, 또한 그 토기의 원산지에 대한 추정을 할 수 있다. 이같은 토기분석은 흔히 태토(胎土)로 불리는 바탕흙의 성분을 알아내고, 제작방법은 어떠했는지, 어느 정도의 온도로 그릇을 만들었는가 등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구체적인 자연과학 분석은 빼기로 한다. 아무래도 그건 전문가의 분야이다.

고대 인류는 삶 자체가 곳 자연이기에 그들에게 개발이라는 용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현생 인류는 고대 인류와는 다르다. 현생 인류가 추구하는 개발은 늘 파괴를 동반한다. 그래도 우리들이 추구하는 개발로 인해 얻어지는 건 있다. 바로 각종 개발로 인해 드러나는 고대 인류의 삶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을 할 때는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표조사 등을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고대 인류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제주시 삼양동은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면서 숱한 유물이 쏟아진 곳 가운데 하나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개발에 따른 지표조사 결과 이 지역에서 소중한 결과물이 나온다. 그건 다름 아닌 삼양동식토기라는 단계의 설정이다.

삼양동식토기의 설정은 곽지리식토기의 기원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하다. 1970년대 곽지패총 발굴을 통해 적갈색경질토기의 존재가 확인됐으며, 이청규 교수는 철기시대 제주도의 대표적인 적갈색경질토기가 곽지리식토기임을 밝히게 된다. 그런데 이청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주도 고고학 연구(1995)를 통해 곽지리식토기의 초기형이 확인되지 않아 그 기원을 밝히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이청규 교수는 그 저서를 통해 기원을 밝히기는 무리였다고 했으나 도시의 개발사업 진행 덕분에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의 초기형은 삼양동식토기로 밝혀진다.

왼쪽이 제주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인 공렬토기(구멍무늬토기)이며, 오른쪽은 삼양동식토기. 공렬토기는 토기 입구쪽이 곧은 반면, 삼양동식토기의 아가리는 밖으로 휘어져 있다. 삼양동식토기부터 이런 '외반구연'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의 특징은 종전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제작수법을 계승하지만 형태면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민무늬토기는 입구쪽이 곧게 세워진 반면, 적갈색경질토기는 입구의 가장자리가 밖으로 휘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이를 고고학적 용어로는 외반구연(外反口緣)’이라고 부른다. ‘외반구연외에도 여러 형태의 토기들이 있으나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의 대표적인 그릇은 외반구연의 모습을 한 토기이다. ,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의 대표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외반구연이 삼양동식토기부터 등장한다는 사실은 삼양동 유적 발굴에서 얻은 수확이다.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실장은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의 대표적인 그릇이 외반구연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그는 논문에서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에 대한 검토 결과 삼양동식토기의 변화과정을 거쳐 곽지리식토기가 완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 자체내의 계기적인 변천과정을 거쳐 완성형인 곽지리식토기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삼양동식토기를 필두로 한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는 제주도만의 것일까. 철기시대로 넘어오면서는 토기의 지역적인 성격이 강해진다.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실장은 철기시대의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는 남해안 지방과의 유사성을 찾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양동 유적인 경우 육지부에서 유입된 단면 삼각형점토대토기도 함께 출토되고 있지만 유입량은 한정적이었다. 따라서 일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기로 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의 쓰임이 많아지게 됐다.

삼양동식토기는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후까지 등장한다. 더욱이 삼양동 유적은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어서 제주화()하고 있는 토기와 마을간의 상관관계도 읽을 필요가 있다. 토기의 지역적 차이가 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삼양동식토기이기 때문이다. 그건 탐라국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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