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탐라라는 강력한 ‘국가권력’의 등장을 읽을 수 있는 유물”
“탐라라는 강력한 ‘국가권력’의 등장을 읽을 수 있는 유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4.07.12 01: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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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 30選] <26> 제주 전역에서 발굴되는 철기시대 ‘곽지리식토기’

곽지리식토기. 토기 입구가 밖으로 휘어져 있다.
다니엘 디포의 장편소설인 로빈슨 크루소의 로빈슨 크루소는 혼자가 아니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28년간 무인도 생활을 하지만 거기에서 프라이데이라는 인물을 하인으로 삼는다. 로빈슨 크루소는 바로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삶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결론은 아니다이다.

이를 두고 E.H.카는 사회와 개인을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필요한 보충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극단적이지만 독립된 개인이 되고 싶은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자살뿐이다.
 
이렇듯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나면서 개인이 아닌, ‘사회를 택하게 만들어졌다. 태어나는 순간 자체는 생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순간 이후는 사회적 단위로 주변에 있는 이들과 뒤엉키며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 역사시대로 흐르게 되면 그런 사회적 단위는 더욱 광범위해지고, 복잡해진다.
 
앞서 이 기획을 통해 토기를 몇 차례 다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토기인 고산리식토기’, 탐라라는 정치체가 움트면서 나타나는 삼양동식토기’, 제주의 마지막 토기에 해당하는 토기로 통일신라시대까지 만들어진 고내리식토기등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탐라국이 만들어지면서 광범위하게 쓰인 토기는 없을까. ‘탐라라는 정치체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할 당시의 토기로 앞서 삼양동식토기를 들었다. 이 토기는 제주 전역에서 쓰이지는 않았다. 이후 등장한 토기가 제주도내 전체에서 쓰이게 된다. 바로 곽지리식토기이다.
 
하나의 토기가 일부 지역에서 쓰이지 않고, 제주도내 전체에서 쓰인다는 건 뭘 의미할까. 그건 국가라는 권력의 등장을 의미한다. E.H.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하나의 광범위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곽지리식토기는 탐라국 초기로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흔히 적갈색경질토기로도 불린다. 곽지패총에서 발굴됐기에 곽지리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며, ‘적갈색경질토기는 형태와 색상, 단단함의 차이를 일컫는다. 적갈생경질토기는 이전 청동기를 대표하는 민무늬토기(무문토기)와 달리 단단한 게 특징이다.
 
적갈색경질토기는 모양도 종전과 달리 토기 입구가 곧바르거나 안으로 휘지 않고, 밖으로 휜 점에 차이가 있다. 고고학 용어로는 토기 입구가 밖으로 휜 것을 외반구연(外反口緣)’이라고 부른다. 외반구연은 제주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육지부의 경질토기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이런 외반구연은 제주에서는 곽지리식 이전인 삼양동식토기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재단법인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의 김경주 연구실장은 토기의 형태를 통해 삼양동식과 곽지리식을 구분하는 연구물(‘제주도 적갈색경질토기연구’, 한국상고사학보 제35)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삼양동식토기에서 곽지리식토기의 변화과정을 모두 4단계로 설정했다. 토기 입구가 밖으로 휘는 외반구연형식의 토기 157점을 대상으로 했다.
 
그의 분석 결과 곽지리식토기는 토기 전체 모습 가운데 지름이 가장 넓은 곳은 토기 입구이며, 몸체 가운데 지름이 가장 넓은 곳은 몸체 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157점의 토기 가운데 이런 형태를 띤 토기는 전체의 54.8%에 해당하는 86점으로 분석됐다. 즉 제주도의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토기는 토기 입구의 지름이 가장 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
 
삼양동식토기와 곽지리식토기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곽지리식 토기는 입구의 지름이 몸체 지름보다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적갈색경질토기의 특징인 외반구연은 앞서 설명했듯이 제주토기만의 산물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곽지리식토기에서 나타나는 외반구연은 제주도의 토기가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곽지리식토기는 외반구연이라는 사실만 같을 뿐 토기의 크기나 전반적인 모양에서는 다른 지역의 외반구연 토기와 차이를 드러낸다.
 
곽지리식토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형화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특별한 토기를 제외하고는 외부로부터 토기를 수입하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건 바로 제주도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제주만의 토기제작 형식을 간직한다는 걸 일깨워준다.
 
이처럼 곽지리식토기는 탐라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는 유물이다. 제주도 전역에서 등장하는 이 토기를 통해 제주엔 탐라라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이들이 등장했음을 알게 되며, 동질의 문화권을 가졌다는 점도 유추가 가능하다. 다른 말로 풀어본다면 문자로 남겨진 게 없는 그 시대의 잃어버린 부분의 퍼즐은 곽지리식토기로 맞출 수 있다. 제주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흔적이라고 감히 말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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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2014-07-12 09:32:01
유익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정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