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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은 대본영 존재 알면서도 “쓸데없는 작업” 책임회피
[특파원 고하나의 일본 이야기] 마츠시로 대본영을 가다<4>
데스크승인 2014.12.11  13:34:22 고하나 특파원 | mediajeju@mediajeju.com  

만약 당신이 살고 있는 곳 뒷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굴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치자. 그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우연히 당신은 그 비밀을 알게 됐다. 비밀 따윈 관심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두가지 의문은 반드시 들 것이다.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이 두가지 의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대본영이란 무엇인가?

‘대본영’이란 일본 천황이 중심이 되어 육군참모총장과 해군군령부총장이 전쟁에 대해 의논하고 작전을 세워 명령하는 곳을 말한다. ‘마츠시로’는 나가노현의 마을명(현재 나가노시 마츠시로마치)인데, 마츠시로에 대본영이 생긴다는 것은 천황을 비롯해 정부나 군사 등 중요한 시설을 도쿄에서 마츠시로로 이동시킨다는 뜻이다.

대본영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화국을 비롯해서 NHK방송국, 인쇄소 등도 건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나가노시·스자카시·오부세마치까지 사방 20㎞의 넓은 장소로 계획됐다.

   
 

# 왜 대본영을 옮기는 계획을 세웠나?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계속하던 1941년 12월 8일,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미국과도 전쟁을 하게 됐다. 반 년 후, 미드웨이 해전 때부터 일본의 하늘은 미국의 폭격기(B29)로 인해 위험한 상태가 됐다. 1944년 봄, 육군대신 (육군을 담당한 일본의 국무대신. 육군3장관의 하나) 은 대본영을 도쿄보다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 계획을 짰다. 이로써 국가 비밀의 공사가 시작됐다.

여기서 잠시 ‘마츠시로’가 선택된 몇가지 이유를 알아보자.

• 바다로 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군함 공격을 받지 않는다. 또한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비행기로부터의 공격 또한 피하기 쉽다.
• 근처에 비행장이 있다.
• 지하고를 파기 적당한 암질의 바위산(岩山)이 있다.
• 예전부터 방적(紡績)공장이 있거나, 도시로부터 공장이 옮겨오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일손이 풍부할 것이라 판단됐다.
• 솔직·담백한 사람이 많다는 지역성 또한 하나의 이유였으며, 나가노현을 칭하는 신슈(信州)라는 말은 신슈(神州)라고 쓰는 것 또한 가능했다는 점과 함께 미나가미(皆神)산이라는 산 이름 또한 적합하다는 견해였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천황은 신(神)이라 불렸다.)

   
   
<대본영 지역별 쓰임과 완성도>

# 구체적 공사 개요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준비>
1. 1944년 여름에 공사에 관계되는 토지를 정부가 매입
2. 건설용 자재가 마츠시로에 운반됐다.
3. 키요노, 니시죠, 토요사카, 히가시죠에 노무자합숙소(飯場)가 만들어졌다.

<공사진행>
1. 11월 11일 오전11시, 이(イ)지구인 조산에 최초로 발파가 시작됐다.
2. 비밀 유지를 위해 ‘마츠시로 창고 공사’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공사 진행됐다.
3.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고 공사는 중지됐다.
4. 이 방공호가 쓰이는 일은 없었다.

‘마츠시로 창고공사’ (약칭 ‘마공사’로 불려졌다)는 극비에 이뤄졌다. 동원된 노동자수는 많은 날에는 기록상 1만명 이상이다. 주야2교대의 강행군으로 진행된 공사는 1945년 8월 15일 까지 계속됐다.

‘마츠시로’의 조산·무학산·개신산, 이 세 군데의 산허리를 뚫은 지하방공호는 총 10㎞ 남짓 되는 거리였으며, 용도는 정부·NHK·중앙전화국(이지역), 대본영•천황천후 거주 공간(로지역), 식품창고용(하지역) 이었다.

그 외에도 송신시설, 수신시설, 황태자와 황태후의 시설 등 관련시설이 설비돼, 전쟁시에는 이미 계획의 80%가 완성됐다고 전해진다.

# “이 부근에 헛된 구멍을 팠다지…”

일본인 안내자로부터 “당시 천황도 이곳 방공호에 관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도서관 서고를 뒤져봤다.

천황이 국가의 일급 비밀을 ‘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본토결전’을 이렇게 준비해놓고서 ‘패전’을 택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권의 책 속에서 더 구체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발견한 자료의 문구를 ‘있는 그대로’ 옮긴다.

전쟁이 끝난 후 천황이 나가노현을 순행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중략) 이는 전후의 부흥 상황을 시찰하고 현민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선광사(善光寺) 뒤 전망대에 서 있던 천황이 “전쟁 중에 이 부근에 쓸모없는 구멍을 팠다고 하지…”라며 당시의 지사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물론 마츠시로의 대본영을 가리킨 것이다. 천황은 전쟁중에도 마츠시로 대본영의 지하 방공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당시부터 이곳을 쓸데없는 구멍이라고 보고 있었다면 “마츠시로에는 가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말은 천황의 본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본토결전’에서 겨우 해방된 1억 국민들에게 “이 대본영이 쓸모없는 구멍에 불과했다는 것인가”하고 묻는다면 국민 역시 불필요했다고 말할터. 그리고 모두 자신의 목을 쓸어넘기며 적이 상륙하기 전에 무조건 항복해 마츠시로에 대본영을 두지 않았던 것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현재 이렇게 살아있지 않았을지도 몰랐을테니까.

마츠시로의 대본영 이전문제는 해군도, 정부도 반대하고 있었다.

오직 육군만이 은밀히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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