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해외 특파원 보고 | 기획특집
해외 특파원 보고
한일 국교정상화 반세기 ‘평화’란 무엇인가
[특파원 고하나의 일본 이야기] 마츠시로 대본영을 가다 <8>
데스크승인 2014.12.24  12:02:39 고하나 특파원 | mediajeju@mediajeju.com  

이곳은 연중 14도.
작년 여름은 여벌로 가지고 간 잠바를 입어도 꽤 쌀쌀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니, 아마 이 안은 따뜻할 것이다.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을 보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마츠시로 대본영에 대한 기사는 일본 전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문은 미군의 일본 상륙작전에 대해서도 자세히 보도했다. 일본인들은 미군이 규슈의 남부에 상륙할 계획이었다는 올림픽작전에 대해서 그제서야 알게 됐다.

만약 전쟁이 그대로 계속됐다면, 그 2개월 후에는 상륙이 시작돼 마츠시로에서의 작전을 바탕으로 본토를 무대로 일대 결전을 전개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1945년 10월 마츠시로 대본영의 기사는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인해 마츠시로라는 이름은 전세계에 널리 퍼졌다. 일본의 신문기사를 인용한 각국의 도쿄 특파원들은 <일본군, 최후의 본거지>란 이름으로, 마츠시로를 보도했다. 이는 ‘일본군의 마지막 몸부림’을 표현하기에 딱 맞아떨어진 뉴스였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신문은 종이 반 장 정도의 앞뒤로 2페이지인, 1면이 정치경제, 2면이 사회면이었다고 한다. 사회면은 전쟁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는 기사로 연일 떠들석했다. 라디오에서도, 연합군 총사령부의 지도로 “사실은 이것이다”는 폭로전이 관심을 모았다. 그런 시기에 마츠시로에 천황의 거처를 옮기고 대본영을 이동시켜 죽창전술 (현대 병기에 죽창으로 맞서려는 무모하고 시대착오적인 대응책을 비유함) 로 본토 결전을 하려고 했었다는 기사는 일반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후의 폭로기사 중에서는 <전함 야마토의 최후>와 함께 이 <마츠시로 대본영>이 쌍벽을 이루었다고 할 정도였다 한다.

가장 먼저 마츠시로를 보도한 미디어는 <시나노마이니치신문>으로 10월26일으로, 27일에는 <요미우리신문>이 그 뒤를 이었다.

   
무학산 남부 사면에 만들어진 천황거주를 위한 건물. 비공개 구역으로, 현재 기상청 정밀 지진관측실.

천황이 머물 곳으로 예정돼 있던 곳은 현재 지진관측소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시찰단이 쇄도한 뒤, 현재 마츠시로지진센터가 설치됐다. 이로써 지진에 대한 연구 및 기록, 자료 수집 등의 결과를 폭넓게 일반시민들에게도 공개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진관측소는 대본영의 터가 될 곳이었다는 사실 또한 전국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견학자가 이곳을 찾았다.

지진관측소는 이런 관광객을 ‘대본영’보다는 ‘지진’으로 관심을 두게 하기 위해 나가노시 당국과 의논했다. 관측소 부근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가노 시내의 도로표식과 관광안내의 표식 또한 <마츠시로 지하 대본영 예정지>에서 <기상청 지진 관측소>로 바꿔달았다.

   
천황이 거처할 곳으로 예정됐던 방. 맹장지와 족자는 당시의 것은 아니다. 비공개 구역, 지진관측소 제공 사진.
   
황후의 방으로 예정됐던 방, 천장과 나게시(일본 건축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수평, 안쪽으로 댄 나무. 원래는 구조재였으나 차차 장식재로 바뀌었음)가 당시를 보여준다. 비공개 구역, 지진관측실 실내.

하지만 견학자들은 “지진보다는 대본영이다.”라며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발길을 옮기는 사람이 많다.

# 또다른 시작을 위한 매듭으로 거듭나길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묻는다. 대체 ‘마츠시로 대본영’ 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독일 나치의 상징 ‘아우슈비츠 수용소’ 란 무엇인가?

일반인들에게 ‘마츠시로 대본영’을 공개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독일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이는 어두웠던 역사를 그저 과거속에 남기지 말고 ‘평화를 위한 메시지’로 만들자는 의미다.

미디어는 반일, 반한 소식만을 자주 전한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반일, 반한을 외치는 극우 성향의 사람보다 상생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텐데 말이다.

   
마츠시로 공사에 사용된 다이너마이트 상자의 측면. 너비 19㎝, 길이 71㎝, 높이 19㎝.

한일 양국의 역사 이야기는 언제까지 시한폭탄과도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을까. 역사의 또다른 측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아픔과 슬픔, 동시에 평화를 위한 노력이 함께 하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위한 또하나의 ‘방향’을 바로 이 ‘다이너마이트’를 통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뜬금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다이너마이트의 주성분인 니트로글리세린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한 폭발물질 중의 하나이다. 이 폭발력은 전장에서 재래식 무기로 사용되거나 현대 토목공사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됐다. 요즘에는 강력한 폭발력을 인정받아 우주개발에 필수적인 로켓을 발사하기 위한 발사제, 또는 로켓의 연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사용됐던 다이너마이트 상자. 제조 20년 6월6일. 쇼와20년은 1945년을 의미한다.

마츠시로의 다이너마이트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화가 나온다.

전쟁 후 감독이 밤에 차를 마시러 왔을 때 ‘양갱’이라고 하면서 다이너마이트를 먹었다고 하는 것이다. (글리세린은 달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물질인 니트로글리세린은 응급약으로도 쓰인다. 협심증으로 통증이 있을 때 극히 소량의 니트로글리세린을 혀 밑에 넣거나 증기를 흡입하면, 잠시 타는 듯한 느낌이 지난 뒤 3~5분 뒤에는 통증이 사라진다.

니트로 글리세린이 협심증 약으로서 효능이 밝혀진 것은 바로 이 단맛 덕택이었다고 전해진다. 19~20세기 무렵 서양에서는 다이너마이트 공장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 공장에 다니던 협심증 환자들에게 협심증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비교적 단맛을 내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작업 중에 무의식적으로 섭취한 덕택’에 협심증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물론 내성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 니트로글리세린이 심장질환 환자에게 만능 치료제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을 부르는 물질’이 조용히 찾아와 목숨을 빼앗는 협심증 환자들에게는 ‘생명을 불어주는 희망’ 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당신의 것이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앞두고 있다.

   
‘로’지구 최대의 조선인 노무자 숙소터. 왼쪽 건물은 마츠시로 고등학교이다.

아픔과 슬픔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일본인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간직되고 있는 바로 이곳. 더이상 어두워선 안될 마츠시로. ‘어둠의 역사’를 단지 ‘과거’에 두지 않고 ‘현재’ 속에 새롭게 살게 하자는, 평화를 향한 많은 사람들의 메시지.

한일 국교 정상화 반세기.
더이상 도돌이표 찍는 것은 관두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평화적 공생’의 메시지로부터 시작되는 미래를 향해.  <<끝>>

고하나 특파원의 다른기사 보기
의견나누기(0개) 운영원칙 보기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0 / 최대 1000바이트 (한글 250자)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SPONSO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