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과 네 것. 확실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구분이 더더욱 명확하다. 내 것에 들어오는 건 침범행위이며, 네 것에 들어가는 것 역시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래왔을 때는 어떨까. 그걸 ‘관습’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럴 때의 판단은 애매해진다.
옛날 오성 이항복의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오성의 집 감나무가 권율 대감 집으로 넘어가자, 감나무에 달린 감을 권율 대감의 하인들이 마구 따버렸다. 이를 보다 못한 오성은 권율 대감 집으로 들어가 주먹으로 창문을 뚫었다. 그러면서 오성은 “이 주먹은 누구의 것입니까” 물었다. 답은 “네 것이다”고 했다. 잘 알려진 일화이다.
오성의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만일 누구의 땅 위에 내가 걸어간다고 하자. 통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까, 아니며 오고갈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는 게 맞을까.
참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만일 애초부터 울타리가 쳐 있는 내 땅이라면 담을 넘고 들어오는 건 불법이다. 그럴 경우엔 통행불가가 명확하다.
그렇지 않고 지역주민들이 당연히 도로로 알고(사유지임은 모른채) 오랫동안 오가던 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비록 사유지이지만 수십 년간 도로로서의 기능을 해왔다고 봐야 한다. 거기를 하루아침에 막는 건 온당한 행위가 되는가의 문제이다.
민법을 들여다보면 ‘주위토지통행권’이라는 게 있다. 어느 토지와 공공으로 쓰는 길 사이에 통로가 없을 때는 사유지라도 통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늘 다니는 도로를 이용하지 못해서 공공이 쓰는 도로로 가지 못한다면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게 법의 취지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관습상도로’인 경우 함부로 길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주시내 운주당 옛 터로 추정되는 곳 동쪽에 난 골목길을 ‘운주당 골목’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제주고고학연구소가 토지주의 요구라며 벽을 쳐버렸다. 수십 년간, 그 이상 이용하던 골목이었는데 하루아침에 통행권을 방해받는 주민들은 어떤 입장일까.
불편을 겪는 주민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호소를 하는 등의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행정이 적극 중재에 나서서 길을 터주도록 노력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바로 그게 행정이 할 역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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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존재 이유가 공익에 있는 겁니다.
행정에서 집행하는 모든 일들도 공익의 일이기 때문에
공권력을 가지고 집행하는 것인데...
울 행정은 멀 하는지 이런 관습도 제대로 안지켜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