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생활력(生活力) 첫 번째 이야기
생활력(生活力) 첫 번째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5.08.27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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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97>

 #1 새벽 3시

 알람이 울린다.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총총걸음을 걷는다. 조용히 씻고 생선배달을 위해 오토바이에 오른다. 어제 먹은 술은 아직 뱃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주말이란 사치다. 1년 365일, 40년간. 그렇게 새벽을 가장 먼저 밝히는 일은 매일 반복되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다.

 지금은 약해졌지만 40대까지는 집에서 매일 소주 두 병을 드셨다. 새벽에 나가고 점심에 집에 들어와선 소주로 몸과 마음의 곤란했던 하루를 잊는다. 술주정이 없을 리가 만무하다. 술을 드신 후 어머니와의 말다툼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새벽 3시에는 기어코 일어난다. 어머니도 아버지에 관한 단점 100가지를 말하면서 장점 한 가지를 살포시 말할 때 하는 얘기다.

 “그래도 네 아버지 생활력 하나는 끝내줘.”

 이 말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도 수 십 년간 한결 같다.

 “나는 목숨을 떨어 바쳐서 일해.”

 이게 생활력(生活力)이다.

 #2.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총총걸음을 걷는다. 조용히 씻고 일하러 가기 위해 차로 향한다. 어제 먹은 술은 뱃속과 머릿속을 뒤집는다. 속상하다. 속이 많이 상했다.
 내 이야기다.

 지금은 약해졌지만 30대 초반까지는 집에서 격일로 소주 두 병을 마셨다. 내성적인 성격에는 혼자 먹는 술이 제격이다. 다른 사람과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사람을 가리고 자리를 본다.
 아내도 자주 어머니와 비슷한 말을 나에게 한다.

 “술 떡 되 들어와선 새벽에 일어나고 일 나가는 거 보면 참 신기해. 정말 괜찮아?”

 안 괜찮다. 정말 괜찮지 않다. 아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게 생활력(生活力)이다.

 #3. 생활력(生活力)

 아버지처럼 가족을 위해 일에 목숨을 거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그 때’는 ‘그렇게’ 해야만 했고, 한 번 발을 헛디뎠다면 동료 베이비부머들은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했을 터이다.
 ‘지금’의 나는 그만큼 단단하지 못하고, ‘이렇게’ 해서 꾸역꾸역 자리를 보전하는 형편에 불과하다. 다만 아버지와 비슷하다면 나름대로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살아왔고 살고 있다는 정도다.
 가끔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거 힘들지 않아? 술 떡 돼서 잠도 별로 못 잔 거 같은 데 새벽에 일어나는 거 보면 신기해. 정말 괜찮아?”

 듣고 싶은 대답을 듣는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그리고 습관 돼서 괜찮아.”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습관이 되면 괜찮다.
 생활력이라는 습관은 어쩌면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다. 이 유전자를 고이 접어 몸속에 간직하며 이렇게 살아 간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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