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54 (금)
눈이 부신 날
눈이 부신 날
  • 홍기확
  • 승인 2015.11.30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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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06>

 어른이 되면 자주 못하거나 아예 못하는 경험이 있다. 자주 못하는 것은 부모와 한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아예 못하는 것은 부모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젖을 물고 자고, 아빠의 팔베개에 소로록 잠에 빠졌었다. 동네 슈퍼를 가더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가고, 아빠의 든든한 어깨에 들어 올리어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우연한 계기로 어머니와 아이와 함께 2박3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남이섬, 에버랜드, 한국민속촌,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덕수궁을 바삐 돌아다녔다.

 남이섬을 걸었다. 어머니와 손을 잡고 걷던 아이는 오른손을 내민다. 나와도 손을 잡고 걷자는 의미인가 보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과 내 손은 아이와 양손을 통해 연결된다. 3대가 연결된 뜨거운 피는 물리적으로는 통하지 않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어머니, 아이, 내 몸속을 요란하게 흘러 다닌다.

 햇살이 비친다. 눈이 부시다. 눈이 부셨던 것이 운이 좋았다. 살짝 눈을 찡그리니 영화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와 손을 잡고 걷던 그 길, 이 길, 저 길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모텔에서 어머니, 아이와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부지런한 어머니는 벌써 씻고 나와 화장품을 바르고 계신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화장품은 퍽이나 간소하다. 게다가 어디서 구하셨는지 화장품은 대부분이 샘플 병으로 조그맣다. 그렇게 어머니는 사셨나보다.

 그때 아이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몇 년 후면 아이는 나와 손을 잡지 않을 것이고, 나와 잠을 잘 기회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부모의 손을 놓고, 잠을 같이 안 자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보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가 나를 업어주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었으니, 아마도 내가 힘들다고 말했나보다. 어머니의 키는 자라지 않고 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냉장고에 우유가 있다. 우유를 열심히 드셔도 키는 내가 태어날 때랑 변함이 없다. 어머니의 키가 145cm라면 그 때 내 키는 125cm쯤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업은 채로 자랑처럼 동네를 한 바퀴 도셨다. 산동네 마을은 들떴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다 큰 아이를 창피하게 업고 다닌다며, 부러움의 눈빛과 함께 다들 한 마디씩을 건넸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지금 아니면 언제 업어봐!”
 
 부모에게, 아이에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어제는 집안에서 아이를 업고 돌아다녔다. 아이는 웃고, 나는 그보다 더 크게 웃었다.

 흐렸던 하늘은 맑게 갰다. 내일은 눈이 부신 날이 되려나 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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