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7:54 (수)
운명을 향한 달리기
운명을 향한 달리기
  • 홍기확
  • 승인 2015.12.28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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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07>

 세월은 간다. 테러에 의한 죽음.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살해. 자살. 죽음은 자연스레 금기시되는 단어지만, 우리는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 많은 죽음을 본다.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죽음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건방지지만, 나름 책으로 배웠고 주변에서 겪어서 두렵지 않다. 아이에게도 항상 죽음은 피할 수 없다며 여러 논리를 가르쳤다. 이제 아이도 애늙은이처럼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사람의 죽은 모습을 본 건 할머니였다. 어렸을 때부터 한 방에서 자고, 군대 가기 전까지도 같은 집에 살던 사람의 죽음은 퍽이나 낯설었다. 부대 내부반으로 걸려온 할머니의 죽음 소식에 서울로 향했다. 나를 어리게 보는 많은 친척들은 내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겠다며 영안실로 향하는 것을 강력하게 만류했다.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 그 뿐이었다. 이렇게 죽음은 평소와 조금 다를 뿐이다.

 할머니는 저승길에 입고 갈 본인의 수의와 자식, 손자, 손녀들의 상복을 미리 한땀한땀 만들어 장롱 가장 깊은 곳에 넣어두셨다.
 내 부모님도 조만간 요즘 분위기에 맞게 자신들의 상을 치루기 위한 상조회 서비스를 가입하고 돈을 꼬박꼬박 납부하실 것이다. 아니, 나 모르게 이미 가입했을 지도 모르겠다.

 다른 가족과 길을 걸었다. 차들이 자주 지나가는 골목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에게 말한다.

 “찻길에서 장난치지 마. 죽을 수도 있어.”

 다른 아이의 엄마는 사뭇 놀란 모양이다. 헉하며 혼잣말을 한다.

 “죽을 수도 있어….”

 반면 아이는 공포심에 의해서가 아닌 그러려니 하며 태연히 대꾸한다.

 “어. 알았어.”

 같은날. 아이가 휴대폰 게임을 하다 자기가 키우는 공룡이 싸움에서 져서 죽었는지 중얼거린다.

 “크헉!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아내는 웃고, 나는 놀랐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어디에서 배웠느냐고. 아이는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나는 칭찬해주며 어린이로써는 어려운 말을 했다며,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직장을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조용히 살고 싶었다. 내가 어디에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그렇게 말이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걸맞게 그저 내 일만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다. 일하는 시간과 먹고자고싸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무 아래 앉아 평온히 책만 보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다만 그럴싸한 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본능적으로 욕심을 가졌다고 말해야겠다.

 하지만 세상은 나와 어울리려 하고, 사람은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칡나무와 등나무, 갈등(葛藤)처럼 얽히고설키며 세상의 중심과 변두리를 오갔다. 아내와도 불같은 사랑의 시기를 지나, 지금은 평온한 ‘사랑의 다른 이름’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사랑, 우정, 연애. 이러한 주제들이 만국 공통의 대화주제가 될까? 딱히 그럴 것 같진 않다.
 탄생은 먼 과거다. 반면 죽음은 가까운 미래요, 누구나 반드시 한번은 겪는다. 공통의 대화주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2015년 11월 28일에 쓴 글이 마무리 되지 않고, 한 달 후인 12월 27일에 마무리가 되었다. 1년의 1/12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내가 죽는다면 이 글은 어디에 묻힐까? 우리는 탄생부터 죽을 때까지 점차 성숙해가는 것일까, 아니면 탄생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대체로 운명(運命)을 믿지 않는다. 유일하게 믿는 운명이 있다면, 죽음이라는 운명(殞命) 뿐이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멋들어지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운명을 향한 달리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을 어쩌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걸까?

 “죽음과 동시에 잊혀지고 싶지 않다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쓰라. 또는 글로 쓸 가치가 있는 일을 하라.”

 이제 며칠 있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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