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물질하는 여성을 부르는 용어로 ‘해녀’가 정말 맞나”
“물질하는 여성을 부르는 용어로 ‘해녀’가 정말 맞나”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1.12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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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제주도에서 영영 사라질 좀수, 좀녀 용어에 대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녀’ 본격 등장…제대로 된 공론과정 거쳐야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나온 이들.

사람이 쓰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정체를 대변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쓰는 말, 경상·전라·충청도 사람들이 쓰는 말. 서로 다르다. 이렇듯 말이라는 건 그 지역을 대변한다. 지역에 따라 달리하는 말을 듣다보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어디 출신이며, 어떤 사고방식을 지닌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든다.

말만 그런가. 아니다. 지역에서 쓰이는 말과 아울러 지역 사람들이 쓰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어를 쓰는 이들이 고유의 단어를 표준말로 바꾸게 되면 그 지역어에 금이 가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지역어도 스멀스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제주도라는 섬 이야기를 해보자. 제주도라는 세 글자를 연상시키는 단어로는 뭐가 있을까. 한라산이라고 답하는 이들도 있을 게고, 세계자연유산을 말하는 이도 있겠다. 그 가운데 분명 ‘해녀’라고 답을 하는 이들도 나타난다.

오늘은 ‘해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니, ‘해녀 용어’가 더 적절하겠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부터 해녀를 부르는 여러 용어를 하나로 단일화, ‘해녀’로 통일한다고 발표했다.

기자는 오래전부터 해녀 관련 기획 취재를 해왔다. 과연 해녀가 맞는가. 취재를 해 온 결과로는 ‘아니다’였다.

기자가 사는 마을은 바닷가다. 그래서 당연히 물질을 하는 어르신을 접하곤 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그들을 부를 때는 ‘해녀’라고 하질 않았다. 기자의 귀에는 ‘좀녀’라는 말이 많이 들렸다.

해녀들은 자신들을 해녀라고 부른 건 아니었다. 앞서 말한 ‘좀녀’와 아울러 ‘좀녜’, 혹은 ‘좀수’라고 스스로를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좀’은 자맥질하다는 뜻인 ‘잠길 잠(潛)’인데 제주어로는 ‘아래아(ㆍ)’ 발음이 난다. 그러나 인터넷상으로는 ‘아래아’ 발음을 표기하기가 쉽지 않아서 ‘ㅗ’로 썼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좀녀’는 잠수를 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잠녀(潛女)’가 되며, ‘좀녜’는 한자어가 아예 제주화된 글자이다. ‘좀수’는 물에 들어가는 ‘잠수(潛水)’가 아니라 물질하는 여성의 또다른 뜻인 ‘잠수(潛嫂)’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역사서를 들여다보자. 대표적인 게 <조선왕조실록>이다. ‘숙종실록’ 28년 기록에 ‘잠녀(潛女)’가 들어 있다. 이때 등장하는 잠녀는 물질을 하며 제주 남성과 함께 심한 부역에 시달리고 있다고 돼 있다.

“배를 부리는 일을 하는 남자의 아내를 잠녀(潛女)라고 일컫는데, 1년 동안 관아에 바치는 것이 포작(鮑作)은 20필(疋)을 밑돌지 않으며, 잠녀(潛女)도 또한 7, 8필에 이르게 되니, 한 가족 안에서 부부(夫婦)가 바치는 바가 거의 30여 필에 이르게 됩니다.” <숙종실록 37권, 숙종 28년(1702)>

해녀라는 기록은 없는가. 해녀도 있긴 하다. 해녀는 단 한차례 등장하는데 물질과는 관련이 없다. 다음 기록을 보겠다.

“왜관(倭館)의 담장 밖으로 다니는 대소(大小) 행인들이 연락을 끊지 않고, 혹은 왜인과 더불어 서로 만나 친하기를 예사로 하고 있습니다. 촌가의 부녀자들과 해녀(海女)들은 생선과 채소를 가지고 와서 매일 아침 관문(館門) 밖에 시장을 벌여서 서로 사고팝니다.” <숙종실록 55권, 숙종 40년(1714)>

이때 해녀는 왜인의 아내를 말하는지 불분명하지만, 물질과의 관련성을 찾을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해녀라는 용어가 등장한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본은 물질하는 여성을 한자로는 ‘해녀(海女)’라고 썼고, 그들은 해녀라는 한자를 ‘아마(ぁま)’라고 불렀다.

해녀를 고착화시킨 건 학자들과 행정 역할이 컸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1990년대부터 해녀라는 용어가 고착화됐다. 제주도 차원에서 관련 책자를 펴내면서 ‘좀녀’나 ‘좀수’보다는 ‘해녀’가 좀 더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녀’나 ‘좀수’를 지키려 한 이들이 있었다. 향토사학자인 김봉옥씨는 ‘좀녀’를, 강대원씨는 ‘좀수’를 고집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 세상과 결별했다.

이제는 ‘좀녀’나 ‘좀수’에 대해 목소리를 낼 이들이 많지 않다. 오랫동안 물질하는 여성들과 부대껴온 소설가 한림화씨가 ‘좀수’를 얘기하고 있으나 목소리는 너무 미약하기만 하다. 언론은 <제민일보>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용어는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다. 물질을 하는 여성들이 ‘좀녀’ 혹은 ‘좀녜’, ‘좀수’로 부른데는 선배들이 그렇게 해왔고,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줬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말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건 그 사람들이 가진 정체성도 사라진다는 의미일테다.

사라지는 건 너무 아쉽다. 해녀와 관련된 용어에 대한 논의를 한번쯤이라도 가져봤으면 한다. 앞으로 ‘제주해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를 시킨다는데, ‘제주해녀’라는 용어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아울러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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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 2016-01-12 11:31:53
해녀라는 얘기가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상태인데 단어를 이제와서 멀로 정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제주를 상징하는 기억의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