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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그림 하나에 정면도와 입체적 표현 모두 등장
건축물 그림 하나에 정면도와 입체적 표현 모두 등장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1.1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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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 다시보기] <8> 건축물 그림 기법

옛 그림, 그 가운데 건축물을 들여다보면 아주 반듯하게 그려진 걸 보게 된다. 이유는 자를 대고 그리기 때문이다. 자를 대고 그리는 그림을 흔히 계화(界畵)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계화는 궁궐이나 누각 등 건축물을 자세히 그릴 때 쓰는 기법을 말한다.

계화는 우리나라에서 쓰인 회화기법은 아니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건축 그림에서부터 시작됐다. 계화는 일반인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건축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집단, 즉 관아에 소속된 전문 화가들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불화에서 나타나는 건축물과 조선시대 궁궐을 그릴 때 이런 기법이 쓰였다.

조선시대 저술 가운데 계화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책이 있다. 조선후기 문인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다. 서유구는 농학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며, 그의 저술인 <임원경제지> 역시 농학을 집대성한 그의 역작이기도 하다. 농학서에 웬 그림이야기인가 싶지만, <임원경제지>는 지금으로 말하면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이다. 농학을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가운데 <임원경제지>의 ‘유예지(遊藝志)’ 편에 계화와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 서유구는 계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진 것과 둥근 것, 굽은 것과 곧은 것, 놓고 낮음, 낮아졌다 높아지는 것, 멀고 가까운 것, 들어가고 나온 것을 알지 못해 섬세하고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아무리 기술자라도 그 미묘함을 알 수 없다.(不知方圓曲直高下低昻遠近凹凸 拙纖纖麗 倖人匠氏 有不能畵基妙者)”

서유구의 글을 들여다보면 계화 기법엔 직선과 곡선의 쓰임이 있고, 멀고 가까운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쓰이고 있었음을 읽을 수 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원근법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건축물을 그릴 때 그런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서유구가 ‘들어가고 나온 것(요철)’을 강조하는 것에서 보듯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건축물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세밀한 묘사가 가능했음을 표현한 것으로도 이해가 된다.

옛 그림은 대개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구도로 그려진다. 그걸 흔히 ‘부감기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도를 보면 다들 상공에서 찍은 사진을 베껴 그린 듯 표현이 돼 있다. 그래야 전체적인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부감기법은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정면도를 포함해 측면을 함께 그리는 입체 형태의 ‘사선도법’이 함께 쓰이곤 한다.

<화성성역의궤>를 들여다보면 수원 화성의 4대문이 잘 표현돼 있다. 4대문의 누각은 바로 정면에서 보이는 정면도 형태를, 이웃한 치성이나 옹성은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하지만 사람 눈에는 이렇게 보일 수 없다. 조선 당시엔 한 화면에 모든 걸 담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정면도와 측면도가 함께 쓰일 수밖에 없었다.

<탐라순력도>에 있는 ‘제주양로’. 여기엔 가장 큰 건물인 망경루는 정면도를 도입해 그렸지만 나머지 건축물 그림은 측면을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사선도법을 적용하고 있다.

<탐라순력도>도 이런 기법들이 혼재돼 있다. <탐라순력도>엔 관덕정 등 누각을 그린 그림이 상당히 많다. 이들 그림은 단순한 정면도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관덕정 지붕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다리꼴 형태로 보인다. 그런데 <탐라순력도>엔 관덕정의 팔작지붕을 표현하기 위해 지붕의 측면을 정면도와 함께 그려 넣고 있다. 이런 그림은 한 눈에 지붕 형태가 어떤지를 알게 만든다. 이처럼 팔작지붕의 측면을 정면도와 함께 그릴 경우 건축물의 웅장함을 배가시키는 효과도 얻게 된다.

<탐라순력도>를 그린 이는 화공 김남길이다. 그는 이형상 목사의 명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았다. 관아에 소속된 화공이기에 그의 손길은 정확성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타 궁궐 그림 등에 비해서는 세밀함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화공 김남길이 자를 대고 그리는 계화기법을 적용하려고는 했으나, 수준은 많이 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시간의 제약일 수도 있고, 전문직업인으로서 관아에 소속된 화공이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탐라순력도> ‘승보시사’의 한 장면이다. 여기에 보이는 건축물은 관덕정으로 정면도와 측면도를 함께 표현하고 있다.

그는 관덕정을 그리면서 현실보다는 지붕을 좀 더 부각시킨 면이 있다. <탐라순력도>에 그려 넣은 관덕정은 지붕과 기둥의 비율이 2대 1 가량이 된다. 또한 관덕정의 기둥도 오락가락한다. 관덕정은 정면 5칸이지만 <탐라순력도>엔 불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아울러 관덕정은 주심포 양식인데, 그림에서는 전혀 알 수 없게 표현을 했다.

그래도 김남길 덕분에 18세기 당시 건축물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입체 기법인 ‘사선도법’을 도입함으로써 어떤 건축물이 맞배지붕인지, 팔작지붕인지의 여부를 현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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