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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대
들이대
  • 홍기확
  • 승인 2016.01.27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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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12>

 중국의 위촉오 삼국정립시절.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과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의가 오장원(五丈原)에서 대치했다. 두 천재 전략가의 공방은 결론적으로 누구도 승리를 따내지 못한 무승부였다. 제갈량이 병으로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장을 잃은 촉나라는 퇴각을 명했고, 사마의는 철군하는 병사를 공격하기 위해 돌진한다.
 흔히 퇴각하는 대군의 꽁무니에는 추격군을 방어하기 위한 병사가 진을 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촉나라는 오히려 퇴각로에서 위나라군을 향해 돌진한다. 사마의는 의아해한다.

 “어? 제갈량이 죽었다고 했는데, 아닌가? 혹시 거짓으로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계략에 내가 당하는 것인가?”

 결국 사마의는 추격을 멈추고 대군을 위나라로 돌린다. 이에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죽은 공명(제갈량의 자)이 산 중달(사마의의 자)을 이겼다’고 평한다.

 전략은 전략가들이 맞붙어야 재미가 나고, 또한 통한다. 인간이 고릴라와 싸운다고 가정해보자. 인간은 수많은 계략을 동원해서 고릴라를 이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고릴라는 단순하다. 닥치고 공격뿐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인간은 고릴라를 이길 수 없다.

 미국의 배우인 로버트 스트라우스(1913~1975)는 말했다.

 “인생은 고릴라와 레슬링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지쳤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고릴라가 지쳐야 끝난다.”

 싸움은 막무가내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분명 이긴다. 교통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삿대질 신공에 욕지거리 사자후를 해대면 보통 상대방이 위축된다. 당연히 패배로 이어진다.
 길거리 말싸움은 더 가관이다. 힘의 강약을 떠나 울고불고 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은 주변의 동정심에 의해 1승을 따내는 경우가 많다. 조용한 상대방은 우여곡절을 불문하고 나쁜 놈이 된다.

 살다보면 많은 전략들이 난무한다. 술자리에서는 선배, 상사들이 ‘이렇게 하면 된다.’고 검증되지 않은 오롯이 경험에 의한 전략전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한다. 책들에서는 사내정치, 자기계발 등 수많은 테크닉을 나열해놓고, ‘이거 어때? 아니면 말고.’식으로 독자들의 간택을 기다린다.

 아내는 계산적이고 주도면밀한 내 성격과는 정반대.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다. 신문은 태어나서 본 적이 없고, 책들은 온통 소설책만 읽는다. 시사내용을 분석해서 알려주면, ‘어, 그래?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해 봤네.’라고 한다. 기운 빠지는 일이지만 사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은 아내와 대화 도중에 매번 느끼는 일이다. 몰라도 잘만 산다. 전략도, 전술도, 승리도, 명예도 없이 잘만 살아간다.

 어제는 오랜만, 아니 근 3년 만에 소설을 붙잡고, 쉼 없이 읽었다. 재일교포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 『Fly, Daddy, Fly』라는 책이었다. 역시나 소설 한권은 따분한 책 10권보다 가치가 높다. 여러 인물에서 나를 보고, 가족을 보고, 남을 보았다.
 주인공은 평범한 47세의 직장인. 고등학생 딸아이가 다른 학교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 주인공은 분노하지만 별 수가 없다. 여기에 조력가가 등장한다. 싸움을 가르쳐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싸움꾼 스승의 지도를 받기 위해 주인공은 1달 반의 휴가를 내고 몸을 단련한다. 그러나 딸을 폭행한 고등학생은 전국 복싱 3년 연속 챔피언!
 상대가 되지 않는, 결과가 뻔한 싸움을, 주인공인 아버지는 전략 따위 없이 닥치고 공격기술을 익힌다. 그리고 정확히 90일 후. 학교 운동장에서 1대 1 결투를 벌인다. 결국에는 이긴다. 복싱 상대에게 복싱으로 붙지 않고, 넘어뜨린 후 동네싸움으로 승리한다.

 나는 전략가일까? 당신은 전략가입니까?
 어쩌면 세상에서, 적어도 인생이라는 싸움만큼은 지구전, 공성전, 탐색전 같은 전략 없이도 잘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단순무식이 허탈하긴 해도, 해탈한 인생의 유일한 기술이 아닐까?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나는 반환점 혹은 터닝 포인트 없이 살얼음판을 걸으며 단순히 목표를 향해, 전략에 함몰돼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게 아닐까? 고릴라와 싸우면서 너무 화려한 기술을 익히고 써먹는 건 아닐까?

 인생에 소홀해도 일상을 소중히, 소박히 살면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단순무식으로 살아도 꽤나 멋진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릴라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소모전. 고릴라와 인간의 싸움처럼 전략이 필요 없는 싸움도 어쩌면 삶의 일면이 아닐까?
 호랑나비 김흥국의 명언도 급작스레 떠오르며 생각이 멈춘다.

 “으아~ 들이대”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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