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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구한말 격변기로 꼽히는 ‘병신년(丙申年)’, 올해는?
고려-조선-구한말 격변기로 꼽히는 ‘병신년(丙申年)’, 올해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6.02.0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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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세배와 덕담의 시간을 북한 미사일 도발에 뺏기게 된 설날 아침 단상
병신년(丙申年) 격변기를 지낸 고려~조선시대 임금의 어진. 왼쪽부터 고려 공민왕, 조선 정조와 고종.

병신년(丙申年) 설날 아침이다.

이미 2016년 새해 첫날부터 ‘붉은원숭이해’인 병신년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엄밀히 따지면 양력 1월 1일부터 병신년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병신년의 병신(丙申)은 ‘갑자(甲子), 을축(乙丑)’ 등 60개 조합의 육십갑자 중 하나로, 예로부터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해왔다.

육십갑자를 사용해 표시하는 연월연시는 모두 음력으로 계산된 것이다. 다만 명리학에서는 24절기 중 첫 절기인 입춘부터 새해의 기운이 드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병신년은 양력 1월 1일도, 음력 1월 1일 설날도 아닌 2월 4일 입춘부터 병신년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자칫 욕설로 들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병신년이라는 표현 금기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민족에게 병신년은 커다란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다.

우선 1356년은 고려 31대 공민왕 재임 시절로,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위해 세운 전진기지 격인 정동행성을 폐지하고 함경도 함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고려가 수복한 해였다고 한다.

특히 이 해 6월에는 원의 간섭을 뿌리치려는 상징적인 의미로 원나라 연호 사용을 금지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인 1776년도 병신년이다. 같은 해 한반도에서는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집권했던 영조가 죽고 정조가 즉위한 해였다.

영조에서 정조까지 이어진 이 시기는 조선 왕조의 ‘르네상스기’로 불릴 만큼 최고 전성기였다.

특히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국가 차원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규장각을 설치해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서자 출신을 등용하고 정약용 등 실학의 대가들을 발탁, 조선 최고의 문예부흥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고종 33년 1896년. 이 해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마지막으로 사용된 해였다.

이듬해부터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었고, 수천년 동안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던 우리 민족은 이 때부터 ‘건양(建陽)’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게 됐다. 물론 독자 연호를 사용한 것이 이 때가 처음은 아니고 이전에도 일시적으로 독자 연호를 사용한 적은 있었다.

다만 입춘 때 대문 앞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문구와 함께 써붙이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문구가 이 때부터 유래됐다고 한다.

2016년 병신년은 대한민국과 제주 역사에 어떤 해로 기록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설을 하루 앞두고 북한이 쏘아올린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게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설날 새해 인사로 가족, 친구, 지인들과 덕담을 주고받을 시간에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불행한 일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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