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2:06 (화)
오늘의 사건사고
오늘의 사건사고
  • 미디어제주
  • 승인 2016.02.08 0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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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14>

서울에서 살 때의 일이다. 라디오의 교통정보를 듣는다.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정체가 심하고, 내부순환로는 꽉 막혀 있습니다. 시내도 마찬가지인데요, 전 구간 소통이 어렵습니다. 외출하실 분들은 마음 굳게 다잡아야겠습니다. 저도 촬영 끝나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막막하고 가슴이 먹먹하고 뭐 그렇습니다.’

다 막힌다는 얘기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는 의미다. 이렇게 막히는 데 기어 나올 테면 나와 보라는 식이다. 라디오 교통정보를 말하는 아나운서도 내심 어색할 것이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정체상황을 포장지만 바꾸어 다른 것처럼 얘기해야 하니 말이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달한다. 다 먹고 사는 게 그런 거 아니우.

TV를 안 보지만 숙직 근무를 설 때, 함께 근무하는 직원 중 꼭 뉴스만 보는 사람이 있다. 뉴스는 보통 그 날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러다 정치, 경제가 끝나고 사회차례가 되었을 때 자극적인 사건사고를 보도한다. 사람들이 지루해질 때쯤 경종을 울려 채널고정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오늘의 사건사고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서 전치 15만주의 상해를 입히는 천인공노(天人共怒),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보험료를 노리고 지나가는 차에 들이대 몸에 전치 2분의 상해를 입은 후, 병원에 2년간 입원한 사기꾼이 섬유제조 전문가에 의해 나이롱 환자로 밝혀져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보통 오늘의 교통정보든 사건사고든 어제, 지난 달, 작년, 1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것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내가 40여 년 전 엄마 젖 먹을 때 곁눈으로 봤던 뉴스다. 보험 사기꾼은 지금도 있고, 단지 수법이 다를 뿐이다. 몸을 360도 틀어서 차에 부딪히던가, 347.2도 틀어서 부딪히던지 그 차이 정도?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있다. 이 차이는 사진 내지는 육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100미터를 두고 본다면 딱히 식별하기 힘들다. 한라산에 올라가 그런 사람들을 본다면 개미보다 조그맣다. 차이는 없어진다. 인공위성에서 사람들을 본다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잘생기고 예쁜 건 결국 보일 때에 국한된 문제다.

이렇듯 오늘의 사건사고 자료는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 10년, 100년으로 넓힌다면 특별할 것이 없다. 사람의 얼굴도 시야를 넓히면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하루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조그마한 개미는 나름대로 부지런히 열심히 일한다. 물론 개미들의 노동시간은 4~6시간으로, 빡세게 일하고 충분히 쉬긴 하지만 말이다.

그보다 아주 작은 미생물도 열심히 세포분열을 하며(이 부분이 끔찍하다. 몸을 때어 내다니!) 자식들을 낳고 있다. 미생물이 45분간 생존한다면, 1,000개의 세포가 몸을 둘로 나누어 100,000개로 되기까지는 5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얼마나 열심히 살며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가!

본인 스스로의 하루를 ‘오늘의 사건사고’로 다른 이에게 중계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똑같을까? 자신이 기자라고 한다면 일상(日常)이 똑같으니 어제의 사건사고를 그대로 읽어내 버리고 말까?

어제는 새벽 2시 40분에 일어났다. 전날 12시가 넘어 잤지만 ‘기적’과도 같이 일찍 일어났다. 3시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나를 도와주는 환경미화원, 운전원들에게 조그마한 성의를 보이기 위해 3시 30분에 선물과 음료를 전달하고 설명절을 잘 보내라고 ‘따뜻한’ 얘기도 해 주었다. 사무실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다 살짝 인터넷 검색으로 딴 짓을 하는 ‘짜릿한’ 유희를 즐겼다.

조금 있으면 언제나 ‘넉넉한’ 집에 갈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오늘 아침밥은 아내의 정성이 담긴 ‘특별한’ 아침밥이 준비될 것이고, 아이와 나는 ‘고맙게’ 먹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 여러 번 ‘사고’ 쳤다.

내일도 여러 번 ‘사고’를 칠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사고’치다가 사고뭉치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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