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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그리고 제주 이야기
“붉은 갓을 아무나 쓰는 건 아니랍니다”
[탐라순력도 다시보기] <12> 주립을 쓴 이형상 목사
데스크승인 2016.05.14  10:25:34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탐라순력도> 가운데 '별방조점'

“근래에 법이 무너지고 기강이 없어져서, 시장 장사꾼들이 살찐 말을 타고 좋은 옷을 입으며, 하인과 천인들이 자대(紫帶)와 주립(朱笠)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하의 복식이 난잡하여 법도가 없습니다. 그러니 존비를 어떻게 구별하겠으며, 귀천을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겠습니까.”<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119권, 광해군 9년(1617)>

조선 광해군 때 사헌부 소속 관헌이던 한영이 올린 글이다. 조선조는 신분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기에, 한영은 사헌부 소속 관리로서 마땅히 문란해진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으나 그리 되질 못했다.

한영은 자신이 사헌부 관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직을 벗어던지겠다고 글을 올린 것이었다. 물론 허락되지는 않았다.

한영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데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단속을 하더라도 허사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헌부 소속 관리들의 부패가 심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당시 기사엔 “대헌(臺憲)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탐심이 많은 소인배들이었다. 풍기를 단속하겠다고 서로 나가서는 각자 사욕만 챙겼다”고 돼 있다.

대헌(臺憲)은 사회기강에 관한 사항을 임금에게 간언하는 직책이었으나 그러질 못했다. 오죽 했으면 ‘야차대당(夜叉大倘)’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야차’는 잔인한 귀신이라는 의미이며, ‘대당’은 큰 도적이다. 사헌부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재산을 챙기기에 무서운 귀신이면서 도적이라는 의미의 ‘야차대당’을 붙여준 것이다.

조선이 시작됐을 땐 어떠했을까. 조선이 건국된 태조 1년(1392) 사헌부가 올린 상소를 들여다보면 복식(服飾)을 검소하게 해야 한다고 돼 있으나 그렇게 되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조선시대는 복식으로 상하를 구별했다. 그건 바로 계급의 위신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입는 옷만 신분 구별의 대상이 된 건 아니었다. 양반들은 신발까지도 구분하려 했다.

“우리나라는 계급에 따라 의복 제도에 등급이 있어서 뚜렷한 형식이 갖춰졌는데, 다만 신발에 대한 제도가 아직 제정되지 않아, 노비까지도 가죽신을 신으니 상하 계급의 구별이 없게 됐습니다. 제도로 정해서 상하의 구별을 밝혀주십시오.”<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1426)>

사헌부의 이 제안으로 가죽신을 신는 것도 신분에 따라 제약을 받게 된다.

그건 그렇고, 맨 앞의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때 한영이 올린 글 가운데 ‘주립’(朱笠)이 보인다. ‘주립’은 <탐라순력도>에도 자주 등장하기에 거론하고 넘어가야겠다. 주립은 붉은 옻칠을 한 조선시대의 갓으로, 군복의 일종인 ‘융복’과 짝을 이룬다. 이형상이 군사적 위치인 절제사 자격으로 순력을 했기에 융복을 입고, 갓도 주립을 쓴 모양이다. <탐라순력도>의 순력 때 드러나는 이형상의 갓은 대부분 주립이다. 붉은색으로 돼 있기에 한눈에도 목사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탐라순력도> ‘김녕관굴’의 일부 장면으로 주립을 쓴 목사를 알 수 있다.
   
<탐라순력도> ‘조천조점’의 순력 장면으로, 가마에 앉은 이가 붉은 주립을 쓴 이형상 목사이다.

그런데 주립은 융복을 입고 그냥 머리에 쓰는 갓이 아니다. 주립엔 이것저것을 단다. 갓에다 호랑이 수염과 새 깃털인 ‘호수(虎鬚)’를 꽂는다. 그런데 이런 복장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조선의 복식은 중국의 것을 참고로 많이 한 것이었고, 겉치레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순조 때 이병영이 상소한 글을 보자.

“신의 생각에는 먼저 궁중부터 절약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나라 관리들의 관복은 중국의 제도를 본따고 있는데 이것도 소모의 근본입니다. 융복과 군복은 폐단이 큽니다. 호랑이의 수염과 꿩의 깃은 일에 보탬이 없고……”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34권, 순조 34년(1834)>

옷이 여러 벌 있어야 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복식을 갖추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자 고종 때는 거추장스런 옷들을 정리하도록 한다. 고종 1년(1864), 그러니까 고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른 때였다. 당시는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던 때여서 고종은 허수아비였다. 조대비가 칙령을 내려 ‘주립’을 없애고, ‘주립’에 꽂는 호수 등도 영원히 없애도록 했다.

옷을 들여다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복식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여기서는 겉핥기 수준의 언급에 그치고 있다. 그래도 순력을 다니는 목사의 신분은 절제사여서 군복을 입고, 주립을 썼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전해줄 수 있다. <탐라순력도>에 붉은 모자를 쓴 사람이 이형상 목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는 점도 알려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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