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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그리고 제주 이야기
“화북포구가 산지포구보다 더 중요한 군사적 위치 차지”
[탐라순력도 다시보기] <14> 판옥선과는 좀 다른 제주의 배
데스크승인 2016.06.06  07:30:50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탐라순력도>의 '화북성조'.

지난번에 이어 배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 탐라는 섬나라였고, 그러기에 해상을 통해 교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나라현 헤이죠쿠(平城宮) 터에서 발견된 목간은 8세기 당시 탐라가 일본과도 교류를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목간에는 ‘탐라복육근(耽羅鰒六斤)’이라는 글씨가 나온다. 그 글씨 뒤로는 쇼무(聖武) 천왕의 연호인 ‘덴표(天平) 17년(745년)’이라고 쓰여 있다.

탐라라고 불렸던 제주도는 한반도 뿐 아니라 일본내 소국과의 교류도 활발했다고도 한다. 외교사절단을 보낸 것은 물론이며, 목간의 흔적에서처럼 교류는 이어졌다. 일본 역사가인 아미노 요시히코(綱野善彦·일본 중세사 전공)는 나라에서 교토로 일본의 중심지가 옮겨진 헤이안 시대(794~1192) 율령을 분석, 제주도가 일본의 여러 소국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미노는 일본내 소국이던 히고노쿠니(肥後國), 도요노쿠니(豊後國) 등이 탐라산 전복을 일본 중앙정부에 올렸다는 기록을 들면서 “제주도와 일본열도의 연관이 깊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교류엔 당연히 운반수단으로서의 배는 필요했다. 당시 배가 어떤 형태인지 알 길은 없으나 제주인들의 배 건조술은 무척 뛰어났다는 건 여러 사료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아미노의 분석처럼 제주도가 일본의 여러 소국들과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면 바다를 충분히 경영할만한 배 건조술이 있어야 한다.

<고려사절요>는 제주인들이 고려 조정에 배를 바쳤다는 기록을 전한다. 고려 8번째 왕인 현종 3년(1012년)의 일이다. “탐라인들이 큰 배 2척을 바쳤다(三年八月壬寅 耽羅人來 獻大船二艘)”고 돼 있다. 큰 배(大船)라면 규모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지만 <고려사>에 등장하는 태조 왕건이 보유한 배를 참고로 하면 될 듯하다. <고려사>는 “태조 왕건이 100여척의 배를 다스렸고, 10여척의 큰배는 길이가 16보(1보는 6척으로 180㎝ 가량됨)다”고 기술하고 있다. 큰배의 크기가 30m 가량 되는 셈이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제주인들에게는 배를 타는 일은 숙명이기도 했다. 고려 때는 왕의 즉위 때 탐라에서 대규모 사절단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동국통감> 기록엔 헌종 즉위(1094년) 때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돼 있다. “탁라(乇羅) 사람 고적 등 194명이 와서 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토산물을 바쳤다”고 <동국통감>은 전한다. 이 정도의 사람이 이동을 하려면 큰 배가 있었거나, 제주사람들이 선단을 구성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걸 의미한다.

제주사람이 만든 배는 어떤 형태였을지는 모르지만 지난번에도 다뤘듯이 빨랐다는 건 알 수 있다. 왜구의 출몰이 잦자 제주사람들의 배 건조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사실(성종실록 235권)로도 간파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본인 학자 다카하시 기미아키(高橋公明)는 “조선의 배는 공격과 수비능력은 뛰어났지만 속도가 느려 왜인들의 배를 쫓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조선군은 제주사람들의 배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탐라순력도>에 나온 배는 예전 제주사람들의 배가 맞을까. 필자가 배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존 제주양식의 배는 아니고, 조선의 영향을 받아 일정부분 조선화 된 배로 보인다. 조선시대 배를 통칭 ‘한선(韓船)’이라고 부르는데, <탐라순력도>에 등장하는 배는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한선의 기본 구조는 바닥이 평평하며 좌우의 양 옆에 판자를 이어 올려서 배 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뱃머리를 뜻하는 이물은 사각의 틀을 지니며, 배의 뒤쪽인 고물은 뿔모양을 하고 있다. 한선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이물이 고물보다는 좀 더 넓다.

한선의 이런 특징 가운데 다른 나라의 배와 특히 차별화되는 점은 바닥이 평평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판옥선’을 든다. 우리가 임진왜란을 꺼낼 때마다 등장하는 거북선이 바로 판옥선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

   
<각선도본>에 실린 조선시대 판옥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시대는 판옥선이 나오기 전에 상당히 많은 종류의 군선(軍船)이 존재했다. 세조 때 신숙주의 건의로 3개의 종류로 체계화되고, 왜란 등을 거치면서 판옥선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탐라순력도>엔 41개 그림 가운데 9개의 그림에 배가 등장한다. 돛대는 1개이거나 2개이다. 이들 배는 한선의 특징이 보이기도 하며,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한선의 특징은 이물이 사각형태를 띠지만 <탐라순력도>에 보이는 배는 뱃머리 부분이 날렵하게 그려져 있다. 배 뒤편인 고물은 한선의 형태인 뿔모양을 하고 있다. 그림상으로는 일반적인 형태의 한선과는 좀 다른 모양을 띠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 전통적인 배의 특징이던 날렵함을 조선후기에도 그대로 간직했던 것일 수도 있다.

배를 만드는 일은 워낙 전문적이기에 <탐라순력도>에 그려진 그림으로 판정하기는 쉽지 않다. 워낙 간략하게 그려져 있기에 행태나 크기를 가늠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다만 <탐라순력도>는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9개 그림 가운데 유독 배가 많이 정박하고 있는 곳이 있다. 가장 많은 배가 그려진 그림은 ‘화북성조’로 관헌이 드나들던 화북포구였다. 다음으로는 조천포구를 그린 ‘조천조점’이 있다. 하지만 제주성 바로 앞의 포구였던 산지포구를 나타낸 그림엔 배가 한 척도 등장하지 않는다.

   
<탐라순력도>에 있는 '화북성조' 일부. 당시 화북포구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였음을 보여준다.

<탐라순력도>는 당시 뭍을 오가던 대표적인 포구가 화북과 조천이었음을 그림으로 말해주고 있다. 제주도를 떠나는 그림으로 ‘호연금서’가 있는데, 여기엔 화북포구에서 떠나는 장면이 잘 표현돼 있다. <탐라순력도>에 나타는 배 그림이 정확한 배의 형상을 떠올리게 만들지는 않지만, 어떤 포구가 군사적·행정적으로 중요했는지는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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