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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만나다
부부, 만나다
  • 홍기확
  • 승인 2016.06.10 10: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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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23>

 자기소개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는 여자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겠다.

 “저는 아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남편입니다.”

 지난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었다. 가정의 달 5월에 2명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21일.
 
 오랜만에 친한 형님들과 술 한 잔을 기울였다.
 50대. 결혼경력 20년 형님은 하소연한다.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어서 평일에 어떻게든 약속 잡아서 술을 먹곤 해. 주말이면 밥 차려 달라하기도 눈치 보여서, 오름에 혼자 가거나 친구들과 등산을 가지.”

 40대 솔로인 형님도 마찬가지다.

 “오후쯤 되면 누구한테 연락 없나 기웃거려. 약속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말이야. 집에 들어가면 혼자니 가나 마나니깐.”

 나는 삼 십여 분간 다양한 하소연을 듣고는 한 방 날린다.

 “저는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집사람 안아주고, 저녁에 잘 때는 뽀뽀해주고 팔베개 해주고 하는데요. 저녁에 약속 없는 날은 집사람한테 저녁에 뭐 맛있는 거 해줄까하고 전화오고, 술안주는 간단한 거라도 다섯 가지 이상은 해 줘서 집에서 술 먹습니다.”
 
 형님들은 당황해 한 마디로 일축한다.

 “아직 삼십대라서 그래. 사십, 오십대 돼 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곤 2009년 친구의 부조금 봉투에 써 준 나만의 ‘주례사’를 떠올렸다.


 “연애를 오래하고 연애할 때도 남들이 부럽게 잘 지내서 그런지 몰라도 결혼하기 전부터 ‘너네 결혼해봐라, 지금처럼 안 싸우고 잘 사나.’라고 친척들이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 물론 난 안 그럴 거라고 했지.
 그런데 친척들은 ‘나도 안 그럴 것 같았는데 그렇게 됐어.’라고 말하더군.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잘 안 싸웠어. 싸운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아예 안 싸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친척들이 별말 없더라.

 그런데 이렇게 잘 지내니 친척들이 자꾸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너네 지금이야 좋지 애 낳아봐라, 여행이고 다닐 수 있나.’라고 말이야. 물론 난 안 그럴 거라고 했지.
 그런데 친척들은 ‘나도 안 그럴 것 같았는데 그렇게 됐어.’라고 말하더군. 하지만 아이 낳고서도 열나게 여행 다니고 그랬지. 오히려 아이 데리고 더 다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이거에 대해서는 별 말 없더라.

(중략)

 그런데 이렇게 잘 지내니 친척들이 자꾸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너네 지금이야 좋지 애 학교 들어가 봐라. 그때는…….’라고 말이야.

 이제는 그냥 웃어. 일일이 반응 안 해. 그냥 말해주지. ‘앞으로 사는 걸 봐.’라고 말이야. 그러면 별 말 못해.

 (중략)

 위에서 말한 친척들, 혹은 친구들의 얘기에 민감해 할 필요도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가 잘 되는 걸 바라지 않아. 잘 되는 걸 보기도 싫어하고 말이야. 내가 너무 비판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살다보니 사실이 그렇더라고.”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3학년. 결혼생활은 12년째다. 2009년이든 지금이든 생활은 크게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에 동참하라는 강요에 흔들림이 없다. 부부 관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지, 어느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절친 형님들은 적어도 신혼 때는 과연 우리 부부처럼 지냈을까?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돌고 돌아 본론이다.
 부부. 만남.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채워야 한다.

 아내는 칭찬을 먹고 살고, 남편은 인정을 먹고 산다.

 여전히 아내는 ‘이 옷 예뻐?’, ‘나 예뻐?’, ‘이 구두 어울려?’라고 묻는다. 칭찬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칭찬한다.
 나는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아내에게 묻는다. ‘이거 해도 돼?’, ‘이렇게 하려는 데 괜찮을까?’ 이미 나는 모든 결정을 내리고, 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아내의 인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대답한다. ‘괜찮은 생각인데?’, ‘조금 어렵지 않을까?’
 
 아내를 칭찬할 때는 꼭 그것만 집중해서 말한다. 옷이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만 대답해야지 화장발이 잘 받았는지 아닌지를 건들면 분노한다. 남편을 인정할 때는 꼭 그것만 집중해서 말한다. 어학학원을 등록해야 하는지 안 해야 하는지만 대답해야지, ‘저번에도 학원 등록하고 가지도 않았잖아!’라고 말하는 순간 남편어린이는 정신적 충격을 받고 삐친다.

 결국 부부관계 시작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대화다. 만약 대화가 단절된다면 부부생활은 절뚝거릴 수밖에 없다.

 불금. 금요일 저녁. 장성한 초등 3학년 아이를 집에 두고, 오랜만에 부부가 데이트를 했다. 산책을 하고 술도 마셨다. 아내는 걸으며 묻는다. “밖에 나갈 것 같으면 더 예쁘게 하고 나올 걸. 이 옷도 예뻐?”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그럼. 예쁘지.”

 다음날 아침. 나는 어제 대화 내용으로 글을 쓰겠다고 했다.
 아내는 궁금한지 어떠한 내용인지 물어본다. 대답하지 않았다.

 뭐, 이런 내용이야.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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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기타 2016-06-13 18:11:13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

메아리기타 2016-06-13 18:10:4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