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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그리고 제주 이야기
“애초에 조선에서 생산되는 말은 작고 둔합니다”
[탐라순력도 다시보기] <17> 서역과 몽골에서 온 말들
데스크승인 2016.08.05  09:00:33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탐라순력도> 가운데 '서귀조점' 일부이다. 목자(말테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앞서 두 차례 말 이야기를 했다. 말을 잘 다룬 이성계 이야기와 조선초 명나라에 수만마리의 말을 징발하면서 일어난 문제 등을 다뤘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으로 다룰 건 조선 전체의 말 이야기가 아니라, 제주와 관련된 말 이야기다. 제주도는 말의 고장이라고 한다. 이번부터는 제주가 왜 말의 고장이 됐는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제주의 말은 작다. 현재 눈에 보이는 말이 그렇다. 요즘엔 경주용 비싼 말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건 제주 말이 아니기에 논외로 쳐야할 듯하다. 우린 흔히 몽골의 말이 들어와서 제주 말이 작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이성계가 탔다는 8마리 말은 무척 뛰어났다. 그 가운데 제주에서 생산한 ‘응상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지금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조랑말이 아니다.

조선초에 명나라에 바치는 수만 마리의 말 때문에 조선은 고충을 겪곤 했다. 한꺼번에 많은 말을 명나라에 바치다보니 품질이 떨어지는 말을 명나라에 보내기도 했다. 때문에 욕은 조선 임금이 먹어야 했다. 조선 태조 때는 품질이 떨어지는 말을 보냈다가 이성계가 명의 태조인 주원장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정도였다. 이성계는 그에 대한 답을 하는데 그 답 속에 애초에 우리가 가진 말의 특성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소국에서 생산되는 말이 본래 작고 둔하므로, 무릇 말을 바칠 때가 되면 힘을 다합니다. 대게 길이 매우 멀기 때문에 다리가 병들고 피곤해 약한 것도 있을 것이오나, 어찌 감히 업신여기겠습니까”(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 2월 19일)

태조 이성계가 변명조로 한 말 가운데 “소국에서 생산되는 말이 본래 작고 둔하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이성계는 분명 우리 말이 작다고 했다. 이성계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답을 하자면 ‘참’이다. 우리 말이 작다는 말은 맞다. 몽골이 지배를 하면서 작은 말을 가져온 게 아니라, 본래 우리 말이 작았다.

제주에 원래 있던 말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제주 말은 애초에 작았고, 그 말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말이다. 그렇게 작은 말을 대게는 ‘과하마(果下馬)’라고 한다. 말 그대로 ‘과일나무 밑을 오갈 수 있는 말’이라는 뜻으로, 매우 작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탐라순력도>를 제작한 주인공인 이형상 목사도 제주를 뜨고 나서 쓴 <남환박물>에서 제주 말의 특징을 읊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질과 품성을 보면 달리거나 걷는 말은 대단히 많으나, 몸집이 크고 준골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남환박물 ‘목장’편)

대제국을 꾸린 원나라는 유목민의 후예답게 모든 영토를 목구(牧區)로 나눴다. 구역별로 말을 키우고 관리했다는 증거이다. 원나라는 직속 목마장이 14개나 되는데, 이 가운데 제주도도 끼어 있다. 원나라가 삼별초를 평정한 이후 탐라를 말의 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충렬왕 2년(1276) 몽골식 목장을 구축했다고 한다. <고려사절요>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원에서 탑날적을 탐라의 다루가치로 삼고, 말 160마리를 방목했다.”(고려사절요 충렬왕 2년 8월)

다루가치는 탐라에 보낸 행정관이다. 탐라총관부를 실제로 관리하는 이로, 행정과 군사를 총괄했다. 그가 탐라에 오면서 말 160마리를 가져왔다는 건, 제주의 환경이 말을 키우기에도 적당했지만, 원나라의 군사적 목적에 쓰일 말을 키우는 곳으로서 제주도 역할이 컸음을 읽을 수 있다.

160마리로부터 시작된 몽골과 제주와의 말 역사. 당시 목장 규모는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대체 원나라에서 가져온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자.

“옛날 고려 때 삼별초가 제주에 웅거해 반란을 일으키자 원나라가 이를 물리쳤다. 이에 제주가 원나라에 편입됐는데, 대원(大宛)의 종마를 보내 섬에 방목했다. 그런데 근래 듣건데, 목장이 점점 줄어들어 말 종자가 왜소해진다고 한다. 이제 대원 종마를 구해 이를 종마로 삼는다면 온 나라에 말을 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영조실록 15권, 영조 4년(1728) 1월 15일)

대원(大宛)은 중국의 서쪽 일대를 말한다. 일명 ‘서역’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중앙아시아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일대 말은 우리나라 말과 달리 크고 튼튼했던 모양이다. ‘영조실록’ 기사를 보면 원나라가 대원 지역의 말을 제주에 방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충렬왕 2년에 들여온 160마리의 말은 서역 지역의 말이었나.

원나라가 탐라에 들여온 말은 ‘대원마’와 함께 ‘달단마(韃靼馬)’도 있었다. 달단은 몽골지역의 유목민을 말하며, 이들이 기르던 말을 ‘달단마’라고 부른다. <조선왕조실록>에 달단마와 관련된 글도 있다.

“원나라 세조가 목장을 만들기를 명하며 달단마를 들여보냈는데 (중략) 그 까닭으로 어승마를 많이 생산한다.”(성종실록 281권, 성종 24년(1493) 8월 5일)

위 글은 제주 출신 고태필이 조정에 올린 글이다. 그는 제주에서 살았을 때의 경험을 읊었는데, 제주도 사람들은 삶이 어려워 말을 팔아서 생업을 꾸렸다고 한다. 그만큼 말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달단마는 몽골과 여진 일대에서 기르는 말로 추정된다.

어쨌든 위 두 기사를 보면 원나라 당시 대원마와 달단마가 제주에 들여와서 키워졌고, 군사용으로 원나라에 다시 공급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말은 조선 고유의 말과는 달리 품질이 뛰어났다. 다시 말하면 대원마와 달단마는 키가 작은 현재의 제주 조랑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들 말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차츰 존재감을 잃고 만다. 왜 제주말은 다 조랑말이 됐을까. 다음에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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