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넥타이를 고치며
넥타이를 고치며
  • 홍기확
  • 승인 2016.08.03 11: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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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28>

 대학의 마지막 학기. 입사원서에 부칠 증명사진을 찍어야 했다.

 당황했다. 우리 가족 누구도 넥타이를 매지 못했다. 지금과 같이 넥타이 매는 동영상이 흔해 빠진 시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넥타이는 낡고 촌스러운 두 개뿐. 결국 매형의 넥타이를 빌렸다. 그것도 목에 쏙 넣어 당기기만 하면 맬 수 있도록 매형이 준비해 주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살았다. 평생 넥타이가 필요치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았다. 누구에게도 넥타이를 매 줄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살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양복 입는 직장을 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부모님은 명함이 있어본 적이 없다. 세상에 ‘본인이 어디 다니는 누구요’라고 말할 필요도,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속해 있는 사무실이 없으니 명함에 적을 전화번호 따윈 없다. 게다가 딱히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만날 이유도 없다.
 직장이나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성급히 명함을 만든다. 부모님은 그 명함을 탁자의 유리 안에 전시한다.
 부모님은 내가 명함이란 신기한 것을 갖길 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사람들은 지금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명함을 주고받는 것. 누군가에게는 평생 동안 못하는 경험이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부러움으로 남는 상처다.
 
 넥타이는 맸다가 풀었다가 했다. 직장을 옮겨 다녔다. 중간 중간 백수노릇도 하고, 수험생 노릇도 했다. 얼마 전까지도 내 재능은 지구를 구하기에는 부족하고, 적성은 직장인이 되기에 부족하다 생각했다.

 백수 시절.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다.
 직장을 두 군데 다녔고, 넥타이를 맸고, 수많은 명함을 사람들과 주고받았다. 하지만 백수 아빠가 낳은 아이의 돌잔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직장 두 군데의 사람들 중 단 한 명만 돌잔치에 왔다.
 넥타이를 풀고 명함을 버리면 세상은 이렇게 비정한 것이다. 첫 직장을 그만둘 때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는 집사람의 배가 만삭이었다. 사람들이 나보고 책임감도 없고, 미쳤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는 끝났다고 했다.

 아이의 돌잔치는 끝났다. 버스를 잘못 탔다.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졸다가 남쪽으로 가버렸다.
 급히 내린 곳은 출근길의 여의도. 온갖 ‘사’자가 붙은 사람들과 금융회사 직원들이 일하는 한국의 월스트리트다.

 정류장에는 나 혼자 뿐.
 버스 정류장에 내린 나는 숨이 막혀 왔다. 여의도 지하철역에서 양복을 입은 직장인 수 백 명이 방금 지하철이 도착했는지 지하보도부터 한꺼번에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람은 한 방향이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나는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뚫고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수많은 넥타이, 정장부대의 눈들이 오로지 나만 쳐다보았다. 그들은 ‘어? 출근 시간에, 그것도 여의도에, 반바지에, 슬리퍼에. 저 녀석 뭐지?’하는 표정이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의 우월함을 보이는 눈빛, 나를 동정하는 눈빛, 심지어 경멸하는 눈빛들이 나를 지나쳤다.

 저 사람들을 뚫고 지하철에 타야 하는데.
 반드시 넥타이를 매리라 다짐했다.
 
 물론 그 이후로 넥타이는 다시금 풀었다 맸다 했다. 지금이 다섯 번째 직장이니까. 그리고 다섯 번째 직장에서 6년 만에, 처음으로 승진이란 것도 했다.

 아내는 호들갑이다. 아내는 내 승진에 기뻐하면서도, 벌써 퇴직을 준비 중이다.
 둘 중에 잘나가는 사람이 꾸준히 직장을 다니고, 나머지 한 명은 50세에 직장을 관두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을 것을 할 때 밀어주기로 했다.

 언제쯤 다시 넥타이를 풀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까지 넥타이를 고치며, 넥타이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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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10:46:24
승진을 축하드리며 지금의 마음으로 계속 제주도에 도움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