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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그리고 제주 이야기
“좋은 말을 죄다 명나라에 바치니 조랑말 뿐이네”
[탐라순력도 다시보기] <18> 조랑말만 남은 이유
데스크승인 2016.08.14  13:51:40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제주특별자치도.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그 이름에 걸맞게 ‘특별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유가 어떠하던 특별법으로 관리되는 지역인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특별한’ 지위는 지금만 그랬던가. 아니다.

탐라국으로 불리던 제주도는 ‘성주(星主)제도’가 존재했다. 성주는 탐라국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칭하는 이름이며, 그 밑에 왕자(王子)도 있었다.

성주는 독립된 지위를 박탈당하는 고려 때도, 조선 초기에도 존재했다. 이때의 성주는 국가라는 독립국을 다스리는 왕이라기보다는, 중앙정부 입장에서 멀리 떨어진 탐라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수단으로서 ‘성주’로 보면 된다. 성주제도가 사라지는 것은 조선 태종에 들어서면서다. 성주제도의 폐지는 제주도가 완전한 조선의 중앙정치에 속하게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된다.

<동국여지승람>을 들여다보면 “성주 고봉례와 왕자 문충세가 입조해 성주와 왕자라는 칭호가 분수에 넘친다면서 이를 고쳐주기를 청했다. 그래서 성주는 좌도지관으로, 왕자는 우도지관으로 부르게 됐다. 이로써 성주제도는 없어졌다”고 돼 있다. 조선 태종 4년(1404)의 일이다.

이후 탐라라는 섬을 지탱해왔던 성주제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제주도는 독립적인 지위도 잃는다. 그래서 세금을 내는, 조선중앙과 제주도와의 관계 설정도 확실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성주시대에는 특산물 등 방물을 바치는 형태였다면, 성주가 사라지고 나서는 세금을 내는 새로운 관계로 변모한다.

‘태조실록’엔 제주의 왕자가 조선중앙에 특산물인 말을 바친 기록이 나온다.

“제주의 왕자 문충보가 와서 좋은 말 7마리를 바쳤다”(태조실록 8권, 태조 4년(1395) 7월 13일)

위 기사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나라가 세워진 후에도 제주에는 성주제도가 그대로 존재한 사실은 물론, 제주에서 생산되는 말을 특산물로 바쳤다는 기록의 가치를 지닌다. 이때 문충보가 가져와서 바친 말은 세금이 아닌, 방물이라는 성격의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성주제도 폐지와 함께 제주지역도 조선의 세금제도에 편입된다. 한자어로는 당시 세금제도를 ‘공부(貢賦)’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공부(貢賦)의 등장은 조선의 중앙정부가 관할하는 지역으로서 세금을 내야 하는 곳으로 제주도가 변한다는 얘기가 된다.

“제주도는 바다로 격리돼 공부(貢賦)를 지금까지 정하지 못했다. 대호(大戶) 중호(中戶) 소호(小戶)를 구분해 토산품인 말로 정한다. 대호는 큰 말 한 마리, 중호는 중간말 한 마리, 소호는 5호를 합쳐 중간말 한 마리를 내게 하라. 암수는 물론이고 탈만한 말을 가려서 세금으로 내도록 하라.”(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1408) 9월 12일)

제주도는 성주제도가 폐지된지 4년만에 조선 중앙에 세금을 내는 관계로 변하게 되고, 조선이 세워진 시점으로 계산하면 건국 16년만에 조선이 직접 관할하는 지방이 됐다는 점을 태종실록을 통해 알게 된다.

그건 그렇고, 조선이 세워진 후에 특산물로 바친 것도 말이고, 제주를 대상으로 공부(貢賦)를 정할 때도 역시 말이었다. 그만큼 제주의 말은 특산품으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앞서 기획에서는 제주에서 키운 말은 서역 등에서 들여온 좋은 말이었다고 했다. 조선의 토종말이나 제주도의 토종말에 비해서는 품질이 우수했다. 그러나 차츰 그런 말은 줄어들고, 지금의 조랑말들만 남게 된다. 왜 그랬을까.

“전번에 함길도에서 좋은 말이 많이 생산된 것은, 개원(만주일대)과 길이 통해 있었으므로 달단마를 교접했다. 이제는 개원과는 통하지 않은지가 50년이 되면서 달단마는 사라졌다. 또한 제주에서 말이 생산되지만 몸이 크고 성질이 순한 것이 생산되지 않아 장래가 염려된다. 동맹가티무르 등 그들이 구하는 물건을 몸이 큰 암수 종마(種馬)와 교역해서 번식시키면 편리할 것이다.”(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1424) 8월 6일)

동맹가티무르는 여진족의 추장이다. 위 기사는 4군6진이 설치되기 전으로, 북방지역은 여진족의 무대였다. 여진족이 버티고 있어서 만주로 통하는 게 쉽지 않았고, 대신 여진족인 동맹가티무르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조선의 특산물을 주고 달단마와 바꿔서 좋은 말을 사들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당시 조선의 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원나라 때만 하더라도 제주에서는 좋은 말을 많이 만들어냈고, 조선초기에 탐라 성주가 특산물로 좋은 말을 바치기도 했는데 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까. 좋은 말이 없기에 여진족과 교역을 해서라도 좋은 말을 들여와야 했을까.

   
태종실록에 실린 ‘쇄마관’과 관련된 내용. 크기나 날렵합이나, 둔함에 관계없이 말을 가져감으로써 종자가 없다고 문제를 삼는 내용이다.

여기엔 조선초 명나라를 향한 부분별한 말 수급이 큰 원인이다. 조선초엔 4척 이상인 큰 말을 골라 진헌마·세공마 등의 형태로 명나라에 보냈다. 어림잡아 수량은 10만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절대 다수는 제주에서 보낸 말이었다. 하도 빼가니 제대로 된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제주에 도안무사로 와 있던 조원이 이런 폐단을 문제삼기도 했다.

“쇄마관은 원대한 생각이 없이 눈앞만 본다. 말을 무조건 색출해간다. 때문에 좋은 종자는 거의 없어졌다.”(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1408) 12월 25일)

얼마나 많은 수의 말을 가져갔으면 조원이 이런 글을 올렸을까. 역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조선초 명나라에 수만마리의 말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제주도는 조랑말 천국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명마를 만들어내는 섬이 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좋은 말은 죄다 빼가니 남은 건 품질을 쳐주지 않는 조랑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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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5 01:29:20
힘이 없이는 좋은 것도 지키지 못했다는 옛 탐라의 서글픔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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