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8 21:23 (목)
열대냐
열대냐
  • 홍기확
  • 승인 2016.08.22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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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30>

 제주가 무덥다. 밤에도 더우니 열대야다. 더워서 운동하기 싫으니 살이 쪄서 열대지방이다. 사람들은 더워 집에 못 있으니 거리 곳곳으로 나가 삼삼오오 모여 한치 같은 생선을 회로 먹는다. 여름에 먹는 생선은 열대어다.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아무래도. 이 열대 더위에서는 열대 쯤 맞아야 제 정신이 들 듯 하다.

 네 살 난 아이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온다. 화장실 문이 안에서 잠긴 모양이다. 열쇄로 열어야만 시급한 볼 일을 볼 터이다. 아직은 여물지 않은 불분명한 발음으로 나에게 물어본다.
 “열대 어디 있어요?”
 이노무 자식아. 멀리서 찾지 마라. 지금 네가 있는 곳이 열대다.
 아무래도. 열대 맞는 거로는 정신을 못 차릴 듯하다.

 내가 중학교 때 ‘썰렁하다.’는 말이 유행했다. 개그를 했는데 재미가 없으면 하는 말이다. 나는 수많은 언어유회로 나름의 개그를 펼쳤는데 친구들은 항상 썰렁하다고 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내가 말을 뱉으면 너무 썰렁해서 지구온도가 1도정도 낮아진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개그를 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막는 거룩한 사업을 했다.
 반추해보면 그 때 개그들이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현재 펼쳐지는 것을 보면 나는 시대를 앞서갔던 것이다. 불운의 아이콘. 썰렁왕자. 게다가 내 개그가 2000년대 들어와 통용되면서 더 이상 지구는 썰렁해지지 않고 있다. 이제 내 개그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어쩌면 지금 무더위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내 몫도 크다.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옳은 얘기다. 더위에 노출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점점 완벽에 가깝게 집에서 옷을 하나둘 벗고 있다. 양심상 웃통만 노출시키고 반바지정도는 입어줬는데, 이제는 문을 열고 이웃이 들여다봐도 팬티만 입고 돌아다닌다. 아이는 한 술 더 떠서 ‘태고의 모습’으로 무언가를 달랑거리며 돌아다닌다. 아빠를 넘어선 청출어람이요, 완벽의 극치다. 우리 부자는 이렇게 하나 둘 무언가를 빼 가면서 완벽을 추구하고 있다.

 날도 더운데 무서운 이야기로 이야기를 맺는다. 임산부, 노약자, 성격 까칠한 사람, 지구에 대한 분노가 충만한 사람은 아래 세 줄만큼은 건너뛰길 바란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 무더운 날, 가뭄에 무는 서서 울었다’
 
 무서운 이야기. 납량특집. 더위극복 기원, 만세만세 만만세!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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