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12곳 중 휠체어 리프트 시설 4곳 모두 작동 안 돼
“비장애인들은 저기로 가는데 2분도 채 안 걸릴 거예요. 휠체어로 가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중앙로 사거리 지하상가 8번출구. 전경민씨(32·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가 중앙로 사거리에서 건너편을 가리키며 묻는다. 지난 1일 전농로 통행 불편 기사(인도(人道)에 휠체어도 못다니는데 '세계안전도시'?)를 보도한 후 중앙로 지하상가 역시 교통약자가 다니기 불편한 곳이라는 제보를 받았다.
기자는 지난 7일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전씨와 함께 중앙로 사거리를 찾았다. 리프트를 이용해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측정해보기로 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용안내 문구에 따라 직원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작동키 없이는 다른 버튼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출구 리프트로 이동했다.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는 모두 200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약 500미터를 돌아 7번 출구로 갔지만 그곳 리프트도 작동되지 않았다. 나머지 두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작동시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 표시조차 없었다. 운 좋게 주변 상가 주인이 우리가 끙끙대는 모습을 발견하곤 작동키를 돌려 리프트를 올려줬다.
리프트는 올라오는데만 6분 가까이 걸렸다. 턱이 높아 몇 번 시도 끝에 휠체어를 올릴 수 있었다. 출구 4곳을 돌다가 지하상가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비장애인은 1분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전씨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리프트 이용도 수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려가는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해요. 이러다 떨어질까 겁나기도 하고. 실제로 서울에서 리프트에서 휠체어가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어요. 여기 경사도 꽤 가파르니 이런 곳엔 엘리베이터가 꼭 필요합니다”
리프트 미작동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관계자는 “재개장한 지 얼마 안돼 통신쪽 복구가 완전히 되지 않아 직원호출 버튼을 눌러도 신호를 받지 못한 것”이라며 “리프트 작동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재개장을 서둘러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선 “공사기간으로 3개월이 짧다는 건 인정한다”면서도 “(제주)시랑 관계자들과 협약한 부분이 있어서 개장일을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최근 개보수 공사시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 사항 여부를 물어보니 그는 “이번엔 장애인 (편의시설)관련해선 바뀐 게 없다”며 “우리도 엘리베이터 설치하고 싶고, 좀 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신경 쓰고 싶은데 예산 문제가 있지 않나”라며 토로했다. 기자는 리프트 주변에 기기 미작동시 연락가능한 전화번호 안내문 부착을 요청하고 관리사무소를 나섰다.
제주시에 중앙로 지하상가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을 물어봤다. 도시건설국 건설과 건설행정 관계자는 “그 지역은 공간 문제 때문에 엘리베이터 설치는 당분간 어렵다”며 “그곳엔 휠체어 리프트가 있으니 그걸 사용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리프트 네 개가 설치되어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이에게 지하상가로 들어가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5일 재개장한 중앙로 지하상가는 석 달간 공사비 총 84억 원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제주중앙지하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양승석 이사장은 개장일 당시 “최신 공기 정화 및 냉방시설을 갖춰 쾌적하고 편리한 쇼핑 공간으로 만들어 제주의 쇼핑 1번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 쇼핑 1번가’가 되기 위해선 과연 장애인 편의시설보다 최신 공기 정화 및 냉방시설이 필수적인 것일까.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