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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요함
[평번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31>
데스크승인 2016.10.26  13:05:34 홍기확 | mediajeju@mediajeju.com  

 방학을 하자 아이가 학업성취도 결과표를 가지고 왔던 적이 있었다. 이제 성취도 결과표가 과거의 성적표를 대체하는 모양이다. 스윽 훑어보자마자 아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뒤돌아서서는 피식 웃었다.

 과목마다 가물에 콩 나듯 ‘잘함’이 있고, ‘보통’이 보통이고, ‘노력을 요함’도 곳곳에 보인다.

 공부보다는 책읽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학교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아이에게도 숙제나 책읽기는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공부는 아이의 흥미에 맡길 따름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중에 ‘내가 국어는 제일 잘해.’, ‘수학은 점점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살며시 부모의 미소가 나온다. 경쟁이라는 투쟁의 장에 살짝 발을 내디딘듯한 문장들이다. 세상의 평가가 이제 아이에게도 조금씩 다가오나 보다. 노력하고 있긴 하구나.

 열심히 사는 편이다. 세상은 열심히 사는 사람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 인생의 ‘성취도 결과표’는 아이와 마찬가지다. 과목마다 가물에 콩 나듯 ‘잘함’이 있고, ‘보통’이 보통이고, ‘노력을 요함’도 곳곳에 보인다.

 물론 선생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차이는 있다. 1차 평가자는 내가 되고, 2차 평가자는 가족이 된다. 3차 평가자는 나와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 인생을 평가할 수 있지만, 성취도 결과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아이는 늘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처럼 행복한 가족이 없다고 한다. 천성이 긍정적인지, 자라며 그렇게 된지 아무리 웅크리고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는 더 중요하니까 관계없다.

 아이는 양치질을 할 때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사내 녀석’이라는 세상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비웃듯 말장난과 웃음, 수다가 잦다. 학원에서 잘했다고 사탕이며 과자를 받으면 하나도 먹지 않고, 엄마의 귀걸이 함에 몰래 넣어두거나 아빠의 책상에 올려놓는 기특함과 섬세함도 갖추고 있다.

아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성취도 결과표는 ‘보통’이나 ‘노력을 요함’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생각하는 성취도 결과표는 ‘잘함’이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성취도 결과표는 ‘매우 잘함’이다.

 최근 두 달 넘게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음직하다. 수많은 글감들이 스쳐갔지만, 그만큼 일과 관련된 생각들이 뒤따라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여유로울 때나 바쁠 때나 모두 한 때인 것은 알고 있는데 기어코 오래 그 한때를 겪었다.

 글을 쓰지 않으니 요즘 바쁘냐는 안부는 귀여운 편이었다. 언제 글을 올릴 거냐는 민원(民願)이나, 도대체 뭐하고 사는 거냐는 민원(民怨)은 엄중한 압박이었다.

 자. 두 달 살짝 조금 남은 올해 내 성취도 결과표는 아직까지는 ‘노력을 요함’이다.

 몰리는 일과 반복되는 일과에 연타석 콤보를 당해 체력은 바닥났다. 허리디스크는 재발해서 온 몸이 기우뚱거린다. 하루에 읽는 신문 외에 글다운 글을 안 읽는 날이 많아져 마음이 불안하다. 늦게 들어가는 날이 많아져, 가족의 일상과 맞추지 못하고 늦어지고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아이의 키를 쟀다. 속세가 말하는 ‘한 뼘 만큼 자랐다.’는 표현처럼 자랐다. 키와 함께 사고의 나무도 자란 것은 물론이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졌고, 생각의 방향은 흡사 낯선 세계로 모험을 떠난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자유롭게 오간다.

 방송통신대학교 공부를 하는 엄마에게는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운동 좀 하라고 핀잔이고, 가끔 집에 오는 백년손님 아빠에게는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라며 에둘러 혼낸다.

 고된 일상에 지칠 때. 그 때가 있다. 아내의 위로하는 몇 마디로 상처를 은근히 치유하지만, 아이의 생각 없이 던지는 단순한 한 마디에는 정신을 번뜩 차린다.

 결국은 아이다. 아이에게서 배운다.

 아이는 아빠의 성취도 결과표를 내민다. ‘노력을 요함’

 가족은 서로의 다른 손을 잡고 걷지만, 한 방향으로 걷는다. 보폭은 가장 짧은 사람 기준에 맞추고, 걸음의 속도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족들의 앞에 있는 것일까, 뒤에 처진 것일까?

 아이에게 받은 성취도 결과표를 빤히 바라본다. ‘노력을 요함’

 아버지라는 존재는 원래 그렇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강해질 때까지, 언젠지 모를 그 때까지는 아들보다 강해야 한다. 아들이 인생살이에 ‘매우 잘함’이라는 결과표를 받을 때까지, 인생기출문제집 같은 참고서를 제공해서 인생내공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지금은 내가 아이에게 그런 아버지인가 하고 살짝 속상한 느낌이 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피곤에 감기는 눈꺼풀과 싸우고 있지만, 다음 학기에는 ‘보통’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내야겠다. 한 학기 망쳤다고 공부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생은 매 학기 평균을 내는 것이 아니다. 5판 3승제처럼 중간에 몇 번 지더라도 결국에 이기면 되는 승부다.

 노력을 해야겠다. 방법은 아이처럼 흥얼거리고, 같이 말장난하고 수다를 부리며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다. 그게 가족이 한 방향으로 함께 걷는 모습이니까.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 홍기확 객원필진 <미디어제주>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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