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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핏줄이 무슨 대수인가”
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24> 최나미의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데스크승인 2017.01.13  09:54:28 김형훈 기자 | coffa@naver.com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도 해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는 그야말로 ‘억척’이라는 단어가 붙어다니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억척’이라는 단어는 이미 제주 여성에게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군요. 바로 해녀로 상징되죠. 해녀는 두 개의 밭을 일굽니다. 하나는 뭍에 있는 밭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입니다. 물질을 할 때면 숨을 참아가며 일을 합니다. 물질을 하지 못하는 날엔 뭍에 있는 밭이 그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애들을 내버렸느냐, 그건 아닙니다. 가족을 먹여 살린 이들이 제주 여성들입니다. 제주 여성들에겐 쉼이라는 틈이 보이질 않습니다.

예전에만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통계를 들여다보죠. 시도별 맞벌이 가구 비율은 제주도가 최고였습니다. 10가구 가운데 6가구 이상이 맞벌이였습니다. 비율로는 61.4%였고요, 서울과는 상당한 격차를 보였어요. 서울의 맞벌이 비율이 얼마냐고요? 제주의 절반인 38.3%였어요.

생각해보면 제 어머니도 한시를 쉬지 않고 일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보죠. 아버지 직업을 따라서 우리 식구는 육지로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물질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육지로 간 우리 식구를 기다린 건 제주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여성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대게 그렇듯 아버지가 주는 월급으로 연명을 하는 그런 일상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질 않았어요. 부업이라고 하죠. 그걸 시도 때도 없이 가져옵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구슬을 한다발로 가져옵니다. 그걸 꿰어야 한다면서요. 그게 끝나면 또 다른 걸 들고 옵니다. 자연스레 우리 형제자매들도 그 부업에 동참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도 집안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한 셈이죠. 팔순을 앞둔 어머니는 지금도 일을 합니다. 음식을 잘 하기에 이곳저곳 행사가 있는 곳을 가곤합니다. 두둑한(?) 일당을 챙기죠. 그런 일이 없는 날에도 쉼은 없습니다. 정 할 게 없으면 자식들 먹으라고 이것저것을 만듭니다. 먹을 걸 만들어놨으니 가져가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정성을 내팽개치듯 먹어주지 않는 자식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요즘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겠죠. 육아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중단을 해야 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그걸 ‘경력단절’이라고 부르죠. 경력단절 여성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순히 받아주는 곳도 많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최나미의 장편동화인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은 여성의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이란 뭔가요.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일만 하는 이들입니까? 요즘 사회는 많이 변하긴 했어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집안을 돌보라는 게 명제처럼 돼 있습니다. 그나마 서서히 사회가 바뀌니 다행입니다.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에 등장하는 엄마에겐 두 딸이 있습니다. 주인공 초등생 6학년 가영과 중학교 2학년 언니인 가희가 있죠. 그런데 집안은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집안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갑자기 가영이 엄마가 폭탄선언을 하고 맙니다. 일을 나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엄마는 고모들에게도 한소리를 합니다. 고모들도 치매 걸린 엄마를 돌봐야 한다며 당번을 정하고 맙니다.

   
집안에서 탈출, 방과후 교사로 나선 엄마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런 엄마가 이해되시나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놔두고 그림 과외 선생이 되고, 아빠 몰래 가영이 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로 미술도 가르칩니다. 언니 교복 단추도 달아주는 걸 깜빡해요. 아빠는 할머니가 아픈 건 모두 밖으로 돌아다니는 엄마 탓이라고만 합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가영이 엄마가 참 나쁘게 보일 겁니다. 그런 엄마가 이해되시나요? 이해를 하지 못할 이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게 있어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요.

축구를 잘 하는 가영이는 남자 애들이랑 어울려서 축구를 즐겨요. 대회 때는 남자 아이들이랑 함께 나가서 우승컵도 들고 오죠. 그런데 가영이도 모르게 축구부에서 빠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어요.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서.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고, 학급회의로 이어집니다. 학급회의 때 남자 아이들은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냅니다. 논란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자 아이들도 포함된 혼성축구팀으로 출전하자는 결론을 얻어냅니다. 가영이가 투쟁하면 싸운 결과물이기도 해요.

가영이 아빠는 어떨까요. 엄마에게 엄청 화가 나 있는데다, 화해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가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는다고 하자 화가 더 치밀어 오릅니다. 아빠가 엄마를 향해 “집에 살 자격이 없다”고 하자, 가영이 엄마는 “내 집이야”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 말에 아빠는 이렇게 선을 긋죠.

“그런 말 미안하지도 않아? 분명하게 말하겠는데 아이들은 장씨 핏줄의 내 딸들이라고. 장가희, 장가영.”

엄마는 그 말에 이렇게 답을 합니다.

“장씨 핏줄의 장가희하고 장가영. 그런데 미안하지만 애들도 다 여자야. 나도 결혼 전에는 그 성이 굉장히 의미 있는 줄 알았지. 그게 별 필요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이 바로 당신이잖아. 결혼 전에 내 성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어. 결혼하고 나면 자식한테 물려줄 수도 없는 성인걸.”

핏줄이 대수인가. 남성 중심의 족보 사회는 핏줄을 생명처럼 여기는데, 가영이 엄마의 얘기는 성(姓)이 여성성을 대표해줄 수 없다는 반론인 것이죠. 다행인 건 우리 집엔 모두 김씨만 있어요. 저도 김씨, 마누라도 김씨이기에 성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은 없던 거죠. 그런데 제 두 딸이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떤 성씨와 결혼을 하게 될까요. 그래서 이 말을 다시 하고 싶어요. 핏줄이 뭐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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