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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홍 작가, ‘가짜’로 ‘진짜’를 말하다
하석홍 작가, ‘가짜’로 ‘진짜’를 말하다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7.02.05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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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石홍 기획전 돌을 던지다 돌에 맞다’ 2월 5일 막 내려
제주 화산석 소재로 미술과 과학 넘나드는 회화 작품 전시
하石홍 전시회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돌' 250여 점이 전시됐다. ⓒ미디어제주

‘마치 소우주 같다.’

지난해 11월 19일부터 두 달여간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하석홍 작가의 ‘하石홍 기획전’을 둘러본 이의 감상평이다. 하석홍 작가는 제주도 화산석을 소재로 설치, 오브제, 평면 회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돌을 표현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250여 점의 작품은 현실의 것이 아닌듯했다. 반경 1미터가 넘는 돌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종이 위에 돌이 붙어 있고, 돌을 액체화해 겉면에 바른 듯한 자동차가 있다. 실제 돌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세계가 전시장 안에 펼쳐져있다. 모두 ‘가짜’ 돌이다.

하石홍 전시회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돌' 250여 점이 전시됐다. ⓒ미디어제주

“이 전시장 안에 진짜 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작가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돌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시뮬라시옹’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뮬라시옹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이론이다. 실재가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하는 작업을 뜻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선 파생된 이미지들이 실재를 대체하고 있어 원본과 모사물의 구분이 없어지는 현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하석홍 작가는 “극사실주의(현실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미술경향)기법과 전혀 다른 시도”라며 “세상에 없는 것에 대한 작업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엔 돌을 표현한 설치작품과 그 뒤로 이 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듯한 회화 작품이 걸려있다. 언뜻 보면 돌을 보고 그린 듯하다. 하지만 돌처럼 보이는 설치작품도 사실은 돌을 입체적으로 그린 회화작품이다. 원본 즉 모델이 된 실제 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석홍 작가는 "'가짜 돌'을 통해 실재가 없는 '시뮬라시옹'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미디어제주

그렇다면 왜 하필 돌일까? 하석홍 작가는 “돌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결과 닮아 있다”고 답했다. 그는 “돌이 다 비슷해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깔도 다르고 모양새도 다 다르다”며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돌도 똑같이 생긴 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돌도 사람처럼 저마다의 삶을 가지고 있다”며 “바닷가에 있는 돌, 성산일출봉에 이끼 먹은 돌, 돌담에 끼어 있는 돌처럼 놓여 있는 곳의 위치나 바람, 온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이 위에 먹으로 표현한 제주도 화산석. ⓒ미디어제주

작가가 이번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진짜 돌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회화계에선 돌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돌처럼 보이려면 질감과 색을 그대로 표현해야 했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소재부터 색상 조합까지 혼자서 고민하고 연구했다.  

하석홍 작가는 “자연색을 내는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인데다 평면 캔버스가 아닌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난 입체면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라 더욱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술 공부를 할 때 재료학을 따로 배우지 않아서 돌이라는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가구 만드는 공장이 의자 소재를 개발하듯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돌자동차는 '큰 바위를 뚫고 나온 자동차'라는 상상력에서 만들어졌다. ⓒ미디어제주

화학을 공부한 적 없는 그가 소재까지 개발해 새로운 회화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 작가는 “미술은 가장 쓸데없고 미친 짓이면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미술 역시 물감과 캔버스라는 ‘물질’을 가지고 작품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을 감상한 이는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해석한다. 작가는 “이 과정이 물질성이 정신성으로 바뀌는 과정이며, 물질이 만연한 사회에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하석홍 작가는 "새로운 회화 기법 시도를 통해 물질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한다. ⓒ미디어제주

기자가 다음 작품 계획을 물었더니, 작가가 “힌트는 ‘돌자동차’에 있다”고 귀띔한다. 그는 “자동차에 돌옷을 입혔듯 사람이 신을 수 있는 돌 신발, 사람이 입을 수 있는 돌 옷 등 패션 쪽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꾸며낸 아름다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빛나던 하石홍 전시회.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구멍 난 돌의 모습에서 굴곡진 우리 삶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어쩌면 하석홍 작가는 돌을 닮은 우리네 삶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우리 삶에 위안을 줄지 기다려진다.

하石홍 전시회을 관람한 한 방문객은 "전시회장이 마치 소우주 같다"고 말했다. ⓒ미디어제주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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