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0:45 (금)
“차량 숭배 때문에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은 뒷전”
“차량 숭배 때문에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은 뒷전”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2.06 16: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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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도시를 만들자] <1> 차량 우선 정책의 문제점
제주도는 차량 소통만 생각…보행친화 서울시 정책과는 딴판

걷고 싶다. 그런데 말처럼 걷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걷기는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활동이면서 그 활동은 건강도 지키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두 다리보다는 차량의 네 바퀴가 오히려 대접을 받는 환경이 됐다. 특히 도심에서는 그런 게 더 두드러진다. <미디어제주>는 2회에 걸쳐 차량에 밀리는 가로 환경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건강의 문제점 등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언제부터인가 제주시내 도로 곳곳에 가로막이 설치되고 있다. 바로 도로 중앙 분리대다. 중앙 분리대는 웬만한 사람은 건널 수 없는 가로막이다. 1년 전부터 중앙 분리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니 제주시내 도로 곳곳은 중앙 분리대가 점령군처럼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중앙 분리대를 설치한 이유는 있다. 무단횡단을 방지해서 교통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는 의지이다. 그런데 이곳저곳에 중앙 분리대를 만들면서 도심의 가로환경을 망치고 있다. 솔직히 중앙 분리대를 건축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흉물’이라는 글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심의 거리를 꼴사납게 만드는 대표적 행위이다.

그런 면에서 중앙 분리대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제한하고 있다. 여기엔 행정의 아주 못된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은 자각하는 동물인데, 자각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이 바로 중앙 분리대다. 시민들은 무지몽매하기 때문에 중앙 분리대를 만들어야만 무단횡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배자의 논리가 바로 중앙 분리대에 담겨 있다.

더 웃긴 건, 화단으로 된 중앙 분리대마저 없애고 있다는 점이다. 화단은 도심의 아주 작은 녹지공간인데, 그걸 파괴하고 있다. 이유는 차량 때문이다. 인간이 우선이 아니라 차선을 증설하기 위해 녹지공간을 없앴다.

이처럼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는 중앙 분리대는 인본(人本)이 빠져 있다. 인간이 중요하며, 인간성을 숭배하겠다는 인본 의지는 온데 간데 없고, 차량이 중요하며 차량을 숭배하겠다는 논리와 다를 게 없다.

사람의 이동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제주시 도심의 가로 환경. ©미디어제주
독일 만하임의 거리. 사람들의 이동이 우선이어서 도로의 턱이 없는 건 물론, 차선의 상당수도 사람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런 차량 숭배의 논리는 탐라문화광장에도 배어 있다. 광장은 모름지기 인간의 활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심이어야 하지만 탐라문화광장은 사람을 불러들이겠다면서 거대한 주차장만 만들어놓았다. 이 역시 인본이 아닌, 차량 숭배의 또다른 면이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도로는 사람을 이동시키고, 수많은 물자를 옮기기 위해 차량 중심으로 조성돼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차량에 매몰된 인간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은 없다. 오히려 제주도는 차량 위주의 정책만 나열하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가 그러지 않았던가. 사람이 자동차와 장애물의 방해를 적게 받고, 늘 안전하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가로가 바로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도로나 사람 이동이 우선돼야 한다는 건 도시계획의 기본이다. 만일 차량과 사람이 교유하더라도 차량이 먼저 이동하지 않고, 사람이 이동하는 그런 환경이 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를 본받으라고 하고 싶다. 서울시는 걷고 싶은 도로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에 보행친화기획관이라는 직책이 있을 정도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도로 다이어트’를 통해 차량을 줄이고, 사람들이 걸어다니기에 편한 도로 20곳을 만들었다. 차량을 더 늘리고, 사람을 무시하는 중앙 분리대만 마구 만들어내는 제주도와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이게 바로 인본이다.

차량보다 인간을 위주로 하는 정책은 서구엔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들은 산업혁명이 가져온 차량 위주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구에 가면 넉넉한 인도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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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과 현대의 조합 2017-02-07 06:35:24
프랑스의 그르노블마을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문화재로 충족시키는
개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바로 이런 개발이 현대관광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인데... 아이구
제주는 언제나 이렇게 할 것인지 ㅠㅠㅠ

옛것이 더좋아 2017-02-07 06:32:17
프랑스의 그르노블망의 개발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문화재로 개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바로 이런 개발이 현대관광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인데... 아이구
제주는 언제나 이렇게 할 것인지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