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37 (금)
“행정은 돈을 길에 버리라고 있는 곳이 아니랍니다”
“행정은 돈을 길에 버리라고 있는 곳이 아니랍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4.21 14: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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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뜬금없이 추진되는 관덕로 ‘정원숲 조성사업’을 보며
예산 1억9천만원 투입해 야생화 식재…“걷는 거리와 배치” 지적

자다 깨면 바뀐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원도심 이야기다. 이 일대엔 없던 게 생기고, 있던 게 사라지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건 화분이다. 어떤 분이 “이게 뭐냐”며 기자에게 연락을 해왔기에 현장으로 향했다.

 

관덕정을 중심으로 큰 도로가 뻗어 있다. 일명 ‘관덕로’로 불린다. 제주도정이 ‘차 없는 거리’를 추진하려했다가 이 일대 주민들의 반발로 사업 자체를 접은 곳이기도 하다. 관덕정 북쪽으로는 목관아도 있다. 얼마전에는 4.3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목관아와 4.3은 이미지가 겹치지는 않는다. 이미지가 겹치려면 제주경찰서가 있어야 하지만 헐리고 없다. 제주경찰서가 있었더라면 4.3의 가치가 더했을 텐데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각설하고, 관덕정에서부터 눈에 띄는 건 화분이다.

 

관덕로 일대에 혈세를 들여 만든 가로숲이 등장했다. 제주시는 '관덕정 정원숲 조성 사업'이라고 했다. 예산은 1억9000만원이다. ©미디어제주

화분을 보니 제주의 옛 선박이던 ‘덕판배’ 모양이다. 나뭇결이길래 진짜 나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드려봤다. ‘통, 통’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 비싸지 않은 섬유강화플라스틱, 즉 FRP 재질의 화분이다. FRP 위에 색만 입혀서 멀리서 보면 나무재질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덕판배 안에는 흙을 채웠고, 돌 2개를 얹혔다. 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다. 멀쩡한 가로수 밑을 돌로 둘러놓았다. 걸어가다가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가만 보니 덕판배보다는 돌값이 더 들어보인다.

 

기자에게 연락한 이는 “왜 돈을 들여가면서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 이거 쓰레기통이 되는 거 아니냐”며 행정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말 누군가가 버리고 간 종이컵도 중간 중간에 눈에 띈다.

 

관덕로 일대를 걸었다. 덕판배가 대체 몇 개인지를 세봤다. 관덕로 북쪽으로 관덕정에서 중앙사거리까지 200m 정도 달하는 구간에 15개가 보인다. 관덕로 남쪽으로는 중앙사거리에서 서문사거리까지 22개의 덕판배가 있다. 모두 37개다. 돌담을 두른 가로수는 일일이 세보질 못했다.

 

그나저나 왜 이런 걸 만들까.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멀쩡한 가로수에 치장한 꼴이니 말이다.

 

제주시청 담당자 얘기로는 ‘관덕로 정원숲 조성 사업’이란다. 야생화가 피어나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이런 사업을 벌인다는 얘기다. 그것도 제주의 냄새를 풍기기 위해 덕판배로 했다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얼마의 세금을 낭비했는지도 물었다. 여기에 들어간 예산은 1억9000만원이다. 적다면 적은 돈일수도 있겠으니, 시민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돈이다. 그냥 놔두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가로를 왜 예산을 낭비하면서 이런 일들을 할까. 이 사업은 지난 3월 15일부터 시작됐고, 5월초까지 끝낸다는 계획이다.

제주시가 '관덕로 정원숲 조성 사업'을 벌이는 구간(빨간색). 관덕로 남북을 다 합치면 600m 가량 된다. ©미디어제주
관덕로 정원숲 조성 사업은 화단 조성과 가로수 하단 정비 사업이 들어 있다. 사진 왼쪽처럼 추진을 하고 있어 자칫 넘어질 우려가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역 주민의 항의를 받고 낮춘 곳. ©미디어제주

길은 사람이 우선이고, 사람이 걷기 편해야 한다. 관덕로 일대는 자연풍광을 즐기러 찾는 곳이 아니다. 자연풍광과 연계를 시킨다면 ‘정원숲 조성’이 맞겠지만, 그게 아닌데 때아닌 정원숲 등장에 주민들은 혼란해한다. 제주시가 이 사업을 벌이자 한 지역주민은 자신의 집 앞에 화분을 두지 말라고 항변(?)하는 바람에 설치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건 그렇지만, 외국은 어떨까. 솔직히 말하면 유럽은 차도와 보도의 턱이 거의 없다. 걷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걷는데 걸리적거리는 걸 마구 놔두지도 않는다. 야생화가 피는 거리. 듣기는 그럴싸한데, 그런 풍광은 오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관덕로라면 역사가 있는 거리로서, 사람들이 오가기 쉽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서민들은 돈이 없다고 울상인데, 돈을 땅에 마구 뿌리는 행정은 그걸 알고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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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네 2017-04-22 14:14:23
화분으로 정원숲을 만든다고요?
숲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나라살림을 맡아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