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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건물을 짓는 것만이 건축의 본질은 아니죠”
“디자인이, 건물을 짓는 것만이 건축의 본질은 아니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4.23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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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시 원도심에서 건축 본질을 찾는 탐라지예 권정우 대표
꿈들 '푸른꿈 작은 공부방' 설계 재능기부 “사회가 살아있다는 걸 느껴”

어제(22일)였다. 매우 즐거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쁜 소식을 말하는 단어인 그런 ‘낭보’였다. 어제 낭보는 ‘푸른꿈 작은 공부방’의 터전이 마련된다는 소식이다.

 

푸른꿈 작은 공부방은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푸른꿈 작은 공부방은 지난 2006년 1월 제주교육대학교 21대 총학생회의 중점사업으로 시작됐다. 당시 학생들은 교사가 됐다. 돈이 없어 배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 위한 사업이 공부방이었고, 지금도 현직 교사와 교사를 꿈꾸는 예비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오고 있다.

 

배운다는 건 문턱이 없어야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겐 ‘더 배워보겠다’는 건 어찌 보면 사치였다. 꿈들이 만든 공부방은 아이들의 그런 욕망을 하나 둘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공부방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공부방 아이들은 늘어나는데,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이 절실했다.

 

22일 열린 '푸른꿈 작은 공부방' 착공식. ©제주대
푸른꿈 작은 공부방 모형. ©미디어제주

다행히도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제주여상 후문의 제주대 부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난 2015년 제주대학교와 협의가 이뤄졌고, 이날 착공식이 열릴 수 있었다.

 

막대한 공사비를 해결해준 곳도 있다. 3억2700만원이 드는 공사비는 시공을 맡은 유성건설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기공식 당일 화끈하게(?)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건물을 지으면 설계도 해야 하고, 설계비도 줘야할텐데. 역시 설계비도 재능기부 형태로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설계를 맡은 이는 탐라지예 권정우 대표(41)다. 어떤 건물이 될지 궁금했다. 그를 만났다.

 

“꿈들의 활동을 보며 사회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어요. 재능기부로 설계작업은 마쳤는데, 실시설계를 제게 의뢰를 해왔어요. 그들에게 제가 조건을 하나 제시했어요. 기존 설계가 아닌, 제가 설계를 직접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죠. 승낙을 받았죠. 처음 설계한 건축가에게도 양해를 구했어요.”

 

탐라지예 권정우 대표가 꿈들과의 작업 과정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제주

1년 전이었다. 꿈들을 만났고, 1년 후 착공식이라는 기쁨을 맞게 됐다. 권 대표가 뭍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게 꿈들이었다. 돈을 벌고 싶었다면 그들을 만날 이유가 없었을 게다. 그에게 건축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이 건축의 본질은 아니죠. 집을 짓는 것만이 건축이라고도 보지는 않아요. 아키텍트 본질이 궁금했고, 역할이 뭔지를 고민하며 지금 그걸 찾고 있어요.”

 

그가 꿈꾸는 건축의 본질은 뭘까. 그는 사회참여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가 생각하는 건축의 본질은 돈 벌이로서 ‘건축사’가 아닌,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구성원으로서 ‘건축가’를 꿈꾸는 건 아닐까.

 

설계를 마친 공부방은 1층의 작은 건물이다. 작은 땅에 앉아있기에 공간활용이 중요했다. 그래서 단단한 고정벽이 아닌, 공간을 열고 닫게 만드는 무빙월을 설치하도록 설계했다. 또한 1층 입구에서부터 동서남북 사방을 잇는 램프를 만들었고, 그 램프를 따라 걸어서 옥상으로 진입하도록 구상했다.

 

그런데 벌써 문제가 생겼다. 본 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민원이 접수됐다.

 

“벌써 민원이 들어왔어요. 소음이 일어날 거라며 민원을 넣었다는군요. 그래도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을 해주는 주민들도 있어요. 어쨌든 풀어야 할 숙제죠.”

 

건축의 본질을 찾는다는 권정우 탐라지예 대표. ©미디어제주

그는 서귀포가 고향임에도 제주시 원도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다. 그의 페이스북은 원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는 기행문과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만큼 그는 제주시 원도심을 사랑한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을까요. 잘 살려내고 싶어요.”

 

그는 철거하려던 숙림상회를 살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제식 건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진 숙림상회의 가치를 알아본 그는 건축주를 설득시켰고, 조만간 새 얼굴을 내밀 예정이다.

 

그에겐 원도심이 보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보물이 사라질지 내심 걱정이다. 때문에 그는 원도심을 헤집고 다닌다. 무계획적 도시개발로 보물이 사라지는 걸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서다. ‘아키텍트의 본질’을 찾는다는 권정우 대표. 기자가 보기엔 이미 본질을 찾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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