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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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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확
  • 승인 2017.07.10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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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42>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가 크니 같이 나가려 하지 않아서다. 신혼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예전에는 여행계획이던 밥집이던 행선지를 보통 내가 결정했다. 하지만 결정 장애가 있는, 좋게 말하면 극도로 신중한 내 스타일은 최종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령 음식점을 예로 들어본다. 나는 가는 시간 투자대비 음식의 만족도에 따른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반경 15km미터를 기준으로 포위망을 좁힌 후, 식당별 메뉴판을 검색하여 메뉴별 소비자의 만족도를 50% 반영하고 그 날의 기분 50%를 합산하되, 음식점별 가산점 항목 다섯 가지를 반영하여 리스트를 10개 내외로 좁힌 후, 최종적으로 최근 한 달간 먹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 먹은 메뉴인지를 고려하여 2~3개 음식점을 결정하여 아내에게 말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2~3개 모두 아내가 별로라고 말하면, 다시금 위 작업을 반복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부 아내에게 위임한다. 다이어리와 머리에 빼곡하게 놀러갈 곳과 맛집, 카페를 꾹꾹 눌러 담은 아내의 결정은 신속하다.

 

동행자란 이런 것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가리고,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는 그에게 기자가 그간의 삶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 중 이어령의 답변은 내 삶을 반추하기에 충분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혼자서 내 그림자만 보면서 달려 온 세월이었습니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모두 경쟁자였습니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동행자가 없다는 것은 사랑에 실패한 것이지요. 이성이건. 동성이건….”

 

아내와 1998년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 20년간의 사연을 글로 엮으면 대하역사소설 10권은 나올 것이다. 결혼 후 열 번이 넘는 이사에, 그 숫자만큼의 다니고 그만둔 직장들. 그럼에도 그 동안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단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전보다 더 나은, 더 풍요로운 삶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여러 목표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한비야는 말한다.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되고, 길을 잃으면 헤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잊지 않는 마음이다.”

 

동행자란 이런 것이다.

같은 목적을 향해 여러 목표를 함께 이뤄나가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픽사(Pixar)’의 작품을 좋아한다.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의 회사를, 1986년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1천만 달러에 사들여 지금의 회사명이 되었다. 그 후 겨울왕국으로 유명한 디즈니가 740배인 74억 달러로 사들여, 지금은 디즈니의 자회사가 되었다.

픽사의 작품은 특별하다. 금발의 공주나 백마탄 왕자가 없다. 흔하디 흔한 히어로도, 권선징악도 없다. 주인공마저 어딘가 부족하거나 소회된 인물이 대부분이다. 가령 『니모를 찾아서』의 한쪽 지느러미가 짧은 장애가 있는 물고기. 『토이스토리3』에서 나오는 커버린 아이들에게 버림받은 장난감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 주인공에게는 동행자가 있고, 함께 성장한다. 니모에게는 도리가(도리는 기억상실증이 있다). 토이스토리의 주인공 우디에게는 버즈(버즈는 우주비행기 장난감이지만 날지 못한다)가 있다. 이들은 모험의 와중에서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하게 된다.

단점은 단점과 만나 장점이 된다.

 

동행자란 이런 것이다.

그릇이 큰 사람보다 자신의 그릇에 딱 맞는 뚜껑 같은 사람이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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