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54 (금)
“내가 바다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바다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7.24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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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허영선, 해녀 이야기 담은 <해녀들> 펴내
 

여성들이 들고 일어난 거대한 항쟁을 기억한다. 일제강점기 때 그 항쟁은 연인원 1만명이 넘는 해녀들의 외침이었다. 바로 1931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구좌·성산·우도 일대에서 일어난 여성들의 항쟁이다.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이기도 했다.

 

그런 항쟁들,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 이렇듯 제주인의 삶과 제주 역사에 묻어낸 자국을 찾아내 시어로 남기는 시인 허영선. 이번에 그가 내놓은 시집은 바로 해녀라는 이름이다. 시집 <해녀들>(문학동네시인선, 8000원)은 기억에 묻힌 항쟁으로부터 시작한다.

 

“해녀 피 빨지 마라”

목포서 날아온 빨간 모자 검은 띠 특공대

허공 향해 팡팡 소리 낼 때

흩어지면 잡힌다

“끼리끼리 꽉꽉 잡아라”

4열로 팔짱 끼자

막힌 물길 터졌네

순식간에 달려든 승냥이 이빨들

붉은 도장 딱따구리 부리처럼

시퍼런 파도를 갈라놓았네

<‘해녀들’ 중 일부>

 

해녀 항쟁을 주도한 이들은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며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정부 포상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물에서의 사투, 뭍에 나와서는 밭일과의 사투, 일제강점기 때는 터전을 지키려는 사투였다. 해방이 되고는 정부와의 사투를 벌이던 이들이 바로 해녀 아니던가.

 

그 때문인지 시인 허영선은 해녀들의 이름을 하나 둘 불러들인다. 김옥련, 고차동, 정병춘, 덕화, 권연, 양금녀, 양의헌, 홍석낭, 문경수, 강안자, 김순덕…. <해녀들> 1부는 그가 직접 만나 취재를 했던 해녀 21명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들에게 헌사한 시집이다.

 

그런데 시인 허영선은 해녀도 시인이란다. 허영선 자신은 뭍에서 시를 쓰지만, 해녀들은 물에서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이란다.

 

21명 해녀 가운데 <해녀 양씨>의 주인공 양의헌 할머니를 기억한다. 북한에 자식을 보내야했고, 제주에 남겨둔 딸은 자신보다 먼저 떠나보냈다. 억척같이 산 그의 삶은 100㎏에 달하는 소라며 전복을 건져 올린다고 󰡐햣키로 오바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바다에 맡겨야 했다.

 

“오사카 외진 병동에 누운 해녀 양씨

오늘도 부탁한다 부탁한다

부디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주거러

한목숨 흐르던

그 바다

아직도 몸안에 흐르고 있어

물노동 팔십 년 그 시퍼런 바다 목소리

내 몸에 흐르고 있어

부탁한다”

<‘해녀 양의헌2’ 중 일부>

 

바다는 해녀를 부른다.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들은 바다에 나설 수밖에 없다. 마치 운명과 같다. 양의헌 할머니도 병상에 있으면서도 바라를 그리지 않는가.

 

“하루 다섯 번

파도 면벽수도하는 저 바다 젊은 바위처럼

끄떡없이 자리 지켜 앉아 있다보면

서서히 가슴엔 불 조금씩 졸여지는 것 느껴지지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그렇다

진술 한 번 해보지 못한 나의 목젖

속울음을 재워두고 어떻게 평생 출렁이는가

짐승처럼 달리고

새처럼 가벼운 부력으로

고생대 애벌레처럼 거기 몸을 맡겨봐라

하루에도 수없이 품ㅇ로 날아드는 것

느껴지지

 

그런데 말이지 내 안엔

기어이 배후가 되는 논동자 있지

휘적휘적 흐느끼는 죽비처럼

왈칵 물 울음 내리치는

 

그러니 너를 품지 않고

어떻게 물에 들겠는가”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바다에 들겠는가’ 전문>

 

그렇다. 해녀들이 물에 드는 이유는 바다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들은 물질에 대한 사랑 덕분에 모은 아픔을 견딜 수 있었다. 식솔들을 살려낸 억척스런 그들의 DNA도 역시 물질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없었겠지.

 

시인 허영선은 해녀들이 뿌린 흔적을 따라 적어 내려갔다고 했다. 그는 ‘시인의 말’을 통해 “나는 그저 그녀들을 뒤따를 뿐이다. 물의 시를 쓰는 물속의 생과 몸의 시를 쓰는 모든 물 밖의 생을 한 홉 한 홉 기록해나갈 뿐이다”

 

시인 허영선은 1980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뿌리의 노래> 등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회원과 제주4.3연구소장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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