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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은 옛것 지키면서 새것 입히는 일”
“도시재생은 옛것 지키면서 새것 입히는 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8.11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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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배우다] <4> 전통을 중시하는 파리의 도시재생
도심을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 세우는 우리와는 달라
   프랑스 파리의 도시재생 지역인 베르시 지구. 옛 포도주 창고를 부수지 않고 살려놓았다. ©김형훈

도시재생. 몇 년 전부터 등장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관련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지자체마다 돈이 뿌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더해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내걸었다. 어마어마한 돈이 뿌려질 예정이다. 안 그래도 지금 진행되는 도시재생이 엉망인데, 여기에다 ‘뉴딜’을 심어놓는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진다는 보장보다는 더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파리의 도시재생은 꼭 짚어봐야 하겠다.

# ‘수직’의 유혹을 떨쳐낸 파리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도시재생 흐름이 봇물을 이뤘다. 도시재생의 시작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낙후된 도심을 재개발하며 고급주택단지로 얼굴을 바꾸었다. 대형 쇼핑몰도 등장했고, 여기에 참여한 자본에 이익을 주는 형태의 개발이 진행되던 시점이다. 파리는 달랐다.

파리는 세계적인 도시재생 흐름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들만의 도시재생 전략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그건 바로 옛것을 지키면서 새것을 입히는 방식이다. 옛것을 지키면서 새것을 심는다? 말이 쉽지 달성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파리의 옛것이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한다. 건축물로만 얘기를 한다면 ‘오스만화’로 대변된다. 19세기 당시 파리는 전면적인 도시 재개발이 이뤄졌고, 오스만 남작이 적임자로 꼽혀 추진을 하게 됐다. 17년에 걸쳐 이뤄진 이 작업은 파리에 통일성을 부여했고, 그걸 ‘오스만 양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파리에 가면 볼 수 있는 건축물이 바로 오스만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파리라고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입히는 유혹에 빠지지 않은 건 아니다. 1970년 몽파르나스 타워 기공식에 참석한 프랑스주거위원장이던 로베르 앙드레 비비앙은 “수직적 도시계획은 도시의 대지를 가장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이다”고 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의 말대로 됐다면 지금 파리는 어떨까. 수평으로 나란히 높이를 맞춘 건물들, 오직 에펠탑만 우뚝 솟아있는 그런 형태의 파리는 없어졌을 게다.

수직을 강조하던 로베르 앙드레 비비앙의 선언은 209m의 몽파르나스 타워를 세워놓는 걸로 끝났다. 대신 파리 서쪽 끝의 ‘라데팡스’라고 불리는 지구를 새로운 지역으로 계획했다. 여기에 가면 얼마든지 높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베르시 지구 일대. 붉은 선 안쪽이 도시재생으로 탄생한 베르시 지구이다. 연두색이 베르시공원이다. ©김형훈

# 넓은 공원이 있는 베르시 도시재생 지구

파리는 1977년 도시계획법을 바꾸면서 파리 도심 재개발의 기본 뱡향을 다시 정한다. 바로 전통 스타일인 오스만 양식으로의 회귀였다.

기자가 둘러본 곳은 베르시 지구다. 개발 이전엔 포도주 창고로 쓰였다. 포도주를 싣고 나르는 철도도 있었다. 이 지구 개발이 본격화된 건 1987년이다. 베르시 지구가 ‘협의대상지구(Z.A.C.)로 지정됐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구획정리 개발사업에 포함됐다. 만일 우리라면 개발하는 쪽이 땅을 매입해서 그냥 밀어붙이면 끝이다. 베르시 지구는 어땠을까. 현상설계가 이뤄졌다. 51㏊에 달하는 상당수는 공원이 차지하고 있다.

베르시 지구는 넓은 공원이 있고, 집합주거 단지도 있고, 상가도 있다. 우선 상가를 둘러보자. 상가는 포도주 창고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냥 밀어버리고 커다란 쇼핑몰을 세우면 될 일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창고를 그대로 보여준다. 포도주 창고 가운데는 열차가 다니곤 했다. 포도주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열차가 다니던 선로도 그대로 보존했다. 도시재생은 이런 것이다. 이런 형태의 재개발은 파리만 있는 건 아니고,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서도 만나게 된다.

   베르시 지구는 포도주를 옮기는 열차가 오갔다. 열차 선로가 그대로 있다. ©김형훈
   포도주 창고 건물을 그대로 살린 베르시지구. ©김형훈

베르시 지구의 집합주거는 앞서 거론했듯이 오스만 양식을 따른다. 그러나 오스만 양식은 문제를 안고 있다. 건물과 건물이 이어진 오스만 양식은 바깥공간을 내부공간과 차단하는 효과는 있지만 건물 내부의 중정 공간이 너무 폐쇄적이다. 베르시 집합주택은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개개의 건축가들에게 맡겼다. 다만 오스만 양식을 지키라고 하면서.

# 건축가들은 옛것을 지키는 방식을 고민

집합주택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폐쇄적이던 오스만 양식을 조금씩 벌려놓았다. 넓은 베르시공원을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집합주거 단지내 모든 세대들이 공원 조망이 가능하도록 하는 그런 설계였다. 오스만도 지키고, 새로 지어진 집합주거 단지에도 도시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오스만 양식을 따르려 했으니 건축물은 높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만나는 그런 아파트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베르시 지구 집합주택. ©김형훈

 

파리엔 베르시 지구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기획 때는 라빌레트를 만났다. 거기는 도축시설이 있던 곳에 공원을 만들고, 문화시설을 입히지 않았던가.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를 세우는 우리랑은 다르다.

도시재생은 새것을 어떻게 옛것에 입히느냐에 달려 있다. 잘못 입히면 도시는 망가진다. 도시재생의 위험성이다.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던 자크 시라크는 파리 시장 당시 이런 말을 했다. “파리시의 가로를 건축적 표현의 장소로 변화시켜서는 안된다. 우리의 중요한 임무는 도시를 유지, 보존하고 완성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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