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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관광 선발해 제주관광 홍보
미스관광 선발해 제주관광 홍보
  • 이진 시민/객원기자
  • 승인 2004.10.28 00:00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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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 반세기]1960년대 초 국내외산업시찰단 제주 방문 잇따라

 

탐라미인선발대회 개최, 관광제주 이미지 부각

1950년대 관광의 여명을 싹틔웠던 제주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 제1횡단도로(5.16도로) 개통과 신규 정기항공노선 개설, 제주~부산간 정기여객선 취항 등 관광기반시설 확충으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연간 5000여명도 안되던 관광객이 1961년에는 1만1178명, 1965년에는 무려 7만5901명(내국인 7만4407명, 외국인 1574명)으로 늘어난 것.

이와 함께 제주개발에 따른 국내외 산업시찰단의 제주 방문도 잇따랐다.

1960년 3월 31일 한일간 상호상환협정에 따라 제주출신 재일동포 90명이 귀향한데 이어 같은해 4월 3일 57명, 4월 10일 81명 등 총 208명이 귀향했다. 이를 계기로 재일동포 모국방문단 21명이 1961년 2월 3일 귀성한 것을 비롯해 8월 26일에는 8.15경축 재일모국방문학생단 71명 중 제주출신 5명이, 1962년 2월 16일에는 재일제주 향토개발시찰단 일행 9명이 귀성했다.

외국인시찰단의 경우 1960년 4월 7일 미국인 존 베도박사 일행이 내도한 것을 시작으로 1961년 1월 13일에는 미국 출신의 핏스 박사 및 슈버트 박사 일행이 산업개발5개년계획 자료수집차 제주를 찾았다.

이에 맞춰 재일제주개발협회가 발족돼 제주개발에 따른 성금이 제주도와 제주시, 그리고 지역주민들에게 보내졌다.

이 밖에 국내산업시찰단으로는 1961년 5월 2일 적십자부녀국장 일행 11명이 사업시찰차 내도했고 1962년에는 당시 박정희 의장이 美 밴프리트 장군과 함께 산업시찰차 내도했으며 국방대학원에서  제주지구시찰단 12명이 찾아오기도 했다.

또 학술연구조사단, 도민생활시찰단, 산업개발시찰단 등 국회 각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을 주축으로 한 시찰단이 제주를 다녀갔다.

특히 국민운동본부에서 1961년 10월 연예단 일행 30명을 제주공연차 내려보면서 제주를 국내관광의 최적지로 홍보했다.

이처럼 국내외 산업시찰단이 잇따른 제주 방문은 제주개발을 더욱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1961년 제주시에서 동부두 산지로와 비행장을 잇는 포장공사가 착공된 것을 비롯해 1962년 제주시-서귀포시간 5.16도로 개설사업이 시작됐고 한림-대정간 산간도로가 개통됐다.

이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관광제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마련한 탐라미인선발대회.

제주도는 제주가 관광의 최적지로 부각되면서 언론사와 공동으로 1962년 9월 15일 탐라미인선발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탐라미인선발대회에서는 미스탐라에 고려진, 준미스 김덕생, 미스인기 문태자, 미스재건 이명순씨 등이 선발됐다. 이들은 친선사절로 활동하면서 관광제주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제주도는 특히 제주가 관광지라는 점에 착안, 별도로 미스관광을 뽑아 제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홍보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때 선발된 미스관광 등 일행은 1963년 9월 26일 일본을 방문, 2주일간 제주관광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제공=제주관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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