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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의미상실된 호접란사업, '오리무중'
[데스크논단]의미상실된 호접란사업, '오리무중'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5.09.08 0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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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인 부실운영으로 1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사업비만 낭비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제주도의 호접란 수출사업.

이미 지난 상반기 이 문제는 제주도내 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제주반부패네트워크와 한국농업경영인제주도연합회 등에서 감사원에 감사청구가 이뤄진 사안이다. 제주도 역시 이와 관련한 '부실'문제를 인정하듯 감사원 감사를 요청했다.

130여억원이 투입된 대형사업이지만, 만 3년이 지나도록 미국 현지농장 준공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등 많은 문제를 발생시켜 왔다는게 감사청구의 취지이다.

무엇보다 호접란 수출사업과정과 자금사용내역에 대한 의혹이 도민사회에 첨예하게 형성되고 있고, 언론과 도의회 뿐만 아니라 현 제주도정 차원에서도 진상조사와 책임규명의 요구가 제기된 바 있는데 실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선 시민단체와 농업인단체의 감사청구 취지를 살펴보면 시험재배 부재 및 호접란 폐기량 과다, 수출저조 등 사업이 극히 부실하게 이뤄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부적합지로 평가된 농장을 매입해 운영하는 등 농장부지매입을 둘러싼 의혹도 일고 있다.

특히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도 4년간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농장 공사를 착공한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공하지 못하는 공사기간의 문제도 제기됐다.
아직 감사원의 감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 대만산 입식,  거창한 '감귤대체산업' 무색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이 사업을 위탁경영하고 있는 제주도지방개발공사는 올해 제주도내 재배농가들과 계약된 20만본(상반기 12만본, 8만본) 수출을 마무리 하고 (호접란 사업이) 자체사업으로 될 경우 내년부터 경영정상화 시점까지 당분간 현지(미국 LA)산 또는 대만산 호접란을 입식해 농장을 운영하겠다고 밝혀 또다시 농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제주산 묘목을 수출할 경우 2개월 이상의 순화기간이 필요한데다 불량률이 높아 운영에 한계가 있다는게 그 이유이다.

한국경제조사연구소 제주사무소가 지난해 호접란 수출사업에 대한 진단용역 보고서를 통해 “수출사업은 초기 시험재배없이 농가에 많은 양의 묘목을 보급하는 등 부실하게 운영됐다”며 “현지 책임경영과 제주도가 아닌 미국 현지에서 호접란 묘를 구입해 생산.판매할 경우 흑자 경영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대만산'을 고집하게 된 한 이유로 풀이된다.

이에 제주도내 호접란 재배 8개 농가로 구성된 '제주도 호접란 수출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제주도의회에 진정서를 내고 "제주도지방개발공사가 제주산 호접란도 경쟁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만으로 농가와 협의없이 대만산 입식만 주장해 도내 농가를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농가들은 미국 현지 농장 공사지연에 따른 상당한 손실이 발생한데 이어 제주산 호접란 수출이 중단될 경우 농가들은 파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농가들은 한발 물러서 사업 본래 취지를 살려서 전체 수출물량의 20-30% 정도만이라도 수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지방개발공사측은 '대만산 입식' 방침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제주도당국은 제주도내 호접란 수출농가, 개발공사 등과 협의해 현지농장 정상화방안을 도출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개발공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현지농장의 조기이양을 추진하고 현지농장을 제주산 농특산물 수출전진기지화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방침만 첨가됐다.

속시원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답은 계속 미루고 있다.

#호접란 사업의 '의미상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가지 문뜩 떠오르는게 있다. 바로 '의미 상실'이다.

'대만산' 입식의 정당성여부를 논하기 이전에 대만식 입식 그 자체가 곧 '의미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애초에 이 사업을 왜 추진했는가. 이 사업을 추진한 제주도당국은 당초 호접란 미국수출사업의 취지와 관련해 크게 두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는 지방재정이 열악한 상황을 감안해 세수 확충, 즉 경영수익사업 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산업적 측면에서 감귤산업의 위기와 맞물려 감귤의 대체작목으로 호접란을 적극 육성한다는 것이다.

사업추진 초기 도의회와 도민사회 일부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많은 우려를 제기했지만 제주도당국, 현재까지 공직에 복무하고 있는 당시 대부분의 실무자들은 저마다 호접란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역설하며 강력히 밀어부쳤다. 그러나 부실은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경영수익사업에 대한 '실전 경험 부족'과, 미국 현지에서 이뤄지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현지사정 이해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2000년에는 미국 LA현지농장 매입과정에서도 하마터면 '비웃음 살뻔한 계약'상황까지 갔다가 번복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지는 공무원 하나 없고

그런데 이제와서, 정작 문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교통정리'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자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공무원이 없다.

'대만산' 입식은 곧 애시당초 계획했던 사업추진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임에도 누구하나 이를 제대로 거론하지 않고, 그저 '정상화'만을 운운하고 있다.

행정에서 정책실패를 해놓고 책임지려는 공무원 하나 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을 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실패의 교훈을 바로 세우기 위해, 최소한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철저히 규명하고 이를 반면교석으로 삼으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주도 당국은 언제까지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을 작정인가. 또 언제까지 진실규명에 손을 놓은 채 '감사원 감사결과'만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인가.

정책실패에 이은 '의미상실', 앞으로 호접란 사업의 추진방향은 가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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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소 2005-09-08 10:14:21
하지말라가 아니라 해야 하죠.
아끼는 후배공직자들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정책실패의 책임이 있다면 응당히 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