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들에게 관심을,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 사회구조에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현실
세상살이가 모두 어렵다고들 합니다. 통계를 한 번 들여다볼까요.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펴낸 ‘한국 중산층의 변화와 경제사회적 결과’라는 연구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세상살이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가구 가운데 중산층 가구의 비중은 6년간 4.9%p 감소해 2009년 전체 가구의 56.5%라고 합니다. 전체 가구의 소득 가운데 중산층 가구의 소득 비중도 같은기간동안 5.9%p 하락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몰리는 건 경쟁입니다. 모두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린다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에서 경쟁 그 자체는 필수불가결한 가치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하에서 존재하기에, 개인은 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풀어쓰면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인간은 일개 개인에 불과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해야 하는 현실. 그 현실에 모두 내동댕이쳐 있는 21세기. 어찌보면 각박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현실을 즐겁게 살고 볼 일입니다.
# 낮은 곳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그런 현실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 동물’이 아닌 ‘공생하는 동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각시켜야 합니다. 나는 나이되 혼자가 아닙니다. 이는 성직자들이 대중들을 향해 외치는 경구가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 일. 올 한해 미디어제주는 ‘다 함께 사는 세상’을 새해주제로 내걸었습니다.
‘다 함께 사는 세상’은 개개인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더욱이 세상의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이 아닌 평범한 이들, 혹은 그들보다 더 낮은 곳에서 아등바등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쏟으렵니다. ‘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이들이 모두 동무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다 함께 사는 세상’은 아주 평범한 진리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말로만 외쳐왔던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주도민들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고․양․부 삼성(三姓)만 제주도민인가요? 아닙니다. 삼성 이전에 토착민이 있었습니다. 역사시대이후 귀양온 이들의 자손은 누구입니까? 지금은 이들이 제주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현 시점을 기준으로 뭍에서 온 이들은 제주도 사람들의 배타성에 힘들다고 하소연 합니다.
# ‘다름’을 인정해야 ‘다 함께’ 가능
피를 나누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인 경우는 어떤가요? 흔히 이주민들이라 부릅니다. 그들은 제주도에 어렵게 뿌리내리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 가정만도 1600가정이라고 하며, 이주노동자도 그 수준이 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엔 ‘다름’을 인정해주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숱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우리와는 완전 다른’ 개념으로 본다면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다름의 인정은 역사에서 말하는 특수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넘어선 특수성을 인정할 때라야 ‘다 함께 사는 세상’이 가능합니다.
올 한해 미디어제주가 내건 ‘다 함께 사는 세상’은 그리 큰 욕망이 아닙니다. 제주도민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평범한 이들보다 다소 위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보다 좀 더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면 됩니다.
미디어제주는 올 한해 ‘다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같이 나누고, 공감하는 일. 매우 쉬워 보이지만 우리들은 잘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스마트폰화 되는 시대. 빠르게 변화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 함께 사는’ 일입니다.
<김형훈 기자/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