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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의 행사 참석
<데스크논단>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의 행사 참석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5.03.17 09:5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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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중 '과전이하(瓜田李下)'와 '오비이락(烏飛梨落)'은 의미는 다르지만 이 말을 사용해야 할 훈계대상은 비슷하다 하겠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거나 오이밭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뜻인데, 공통점은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이다.

물론 배가 떨어지는 찰나에 날아가는 까마귀가 있다거나, 오이밭에서 불가피하게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사람에게는 정말 억울한 상황일 수 있으나 상황이 그렇게 맞아 떨어지니 주위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회피할 방안은 없는 듯 하다.

최근 제주사회에서 체육계 사조직인 '오라회'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 조직이 순수한 친목도모의 차원에서 구성됐는가, 아니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거 사조직인가에 있다.

모임 회장이 공식사과를 하고, 이 모임의 창립총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태환 제주도지사도 서둘러 해명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또 이 모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제주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재 경찰과 선관위가 선거사조직 여부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오라회’의 문건을 놓고 봤을 때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의심받을 만한 충분한 상황
활동계획이나 활동방향 등이 온통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내용들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모른채 이 문건만을 살폈을 때에는 여지없이 선거용 사조직으로 의심받을 것이 뻔하다.

더욱이 이 모임 창립총회 때 김태환 도지사가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는데, 그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행사진행 시나리오’라는 문건은 더욱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마치 계급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언어와 문맥들로 ‘충성’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라회 회원 일동은 지사님의 크나 큰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도정방침에 적극 찬동하고 언제 어디서나 일당백의 투지로 지사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라는 장황한 건배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튼 다시한번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체육계 인사 40여명이 ‘오라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창립총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는 김태환 지사가 참석했다. 차후에 오라회와 관련된 활동계획 및 활동방향, 행사진행 시나리오 등의 문건이 대외에 노출됐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내년 지방선거에서 특정후보를 위한 필승전략 수준이어서 선거용 사조직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대해 오라회 회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또 오라회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제주도체육회 사무처장도 언론보도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며 억울해 하고 있다. 김태환 지사는 순수한 엘리트 체육인 모임인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관련 문건은 체육회 사무처장이 개인적 메모차원에서 작성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이러한 상황을 접하더라도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어쩌면 의심이 가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한 것이 아닌가.

오라회가 선거사조직인지, 순수 친목단체인지는 선관위와 경찰수사에 맡기기로 하자.

#도지사 처신 다시 생각해봐야
그러나 제주도정의 책임자인 김태환 지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야 할 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충분히 의심받을 행동이 있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다른 하나는 원칙과 기준을 갖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이밭을 불가피하게 지나다 갓끈을 고쳐 매게 된 것인지, 배가 떨어지는 찰나에 날아가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심받을 만한 충분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과전이하’와 ‘오비이락’ 격으로 정말 억울해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가 된 모임에서 도백이 연관돼 구설수에 오르고 있기 때문에, 형사적 문제를 차치하고 설령 정황적으로 억울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또 하나는 도지사의 각종 행사참석이다. 민선시대 이후 부작용 중 하나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지나친 행사참석 또는 행사참석을 강요받는 것이다. 얼마나 심했으면 민선 2기 때에는 도지사와 시장.군수들이 각종 행사 참석의 룰을 정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지역경제가 매우 어렵고 감귤원 간벌 등으로 초비상적인 마당에 하필 그 모임행사에 도지사가 축사를 하러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당사자들의 주장대로 순수한 친목모임이라고 한다면 도지사가 그러한 소수 친목모임까지 축사를 하러 다니는 ‘한가함’을 보였다는 것인가.

그런 모임 일일이 찾아다닌다면 하루에도 수십건, 아니 수백건의 모임을 모두 참석해야 형평성에 맞는 것 아닌가.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때 도지사의 이번 일과 관련된 처신은 여러모로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하겠다.

이것이 이번 ‘오라회’ 파문이 주는 교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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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귀 2005-03-17 16:13:50
까마귀가 나는 찰나에 배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배가 떨어지는 찰나에 까마귀가 날아간 것이라구요~~
억울한 심정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엘리트 체육인 모임인줄 알고 창립총회에 갔다고 하잖어요
그분 어디 참석하고 악수하는거 무지 좋아하는거 잘 알잖아요

정론 2005-03-17 10:27:12
정말 좋은 글입니다.

도민 2005-03-17 10:10:06
도지사가 아니라고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믿어야지 왜 자꾸 시비인감?

길을가다가 2005-03-17 10:09:12
딱 부러진 지적이다. 백번 동감한다. 처음부터 의심받을 짓은 하지 말아야지.
행사란 행사는 다 참석하는 것은 도지사의 덕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