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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심의 기억과 역사가 묻어나는 그런 콘텐츠를 심어라”
“옛 도심의 기억과 역사가 묻어나는 그런 콘텐츠를 심어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2.10.07 08: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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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 지킴이로 자임하고 나선 비앤비판게스트하우스 신창범씨

제주시 원도심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신창범씨.
일본식으로 동문통, 서문통, 칠성통 등으로 불리던 곳. 여긴 예전 제주 도심의 중심지였으나 화려한 명성은 오랜 기억일 뿐이다. 때문에 공동화 현상을 겪는 이 곳을 살리자는 논의가 수도 없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은 없다. 원도심을 재개발하겠다며 고층 아파트 단지를 세우는 논의가 일다가 이젠 수백억원을 들여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과연 이런 논의들이 옛 도심을 복원하는 밑바탕이 될까.

그건 아니다고 과감하게 대드는 이가 있다. 옛 해짓골에서 비앤비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신창범씨(48)는 돈만 퍼붓는 그런 일이 아닌, 기존 시설에 콘텐츠를 집어넣는 제대로 된 일을 하라고 꾸짖는다.

그는 제주인이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온 지는 오래지 않다.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엔 서문로 일대에서 동초등학교로 오갔고, 중학교 때는 거꾸로 산지천을 거쳐 제주중을 오갔다. 그 중간 지점이 해짓골을 비롯한 제주 원도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오랜 기억은 그의 가슴을 내내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 은퇴는 좀 더 빨리 고향 제주에 내려와 정착하겠다는 의지였다.

이왕 제주에 내려올 거면 좀 더 일찍 은퇴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직장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오는 방법도, 어떤 일을 만들어서 고향에 내려오는 방법이 있었죠. 저는 후자를 택했어요.”

게스트하우스에 들른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주공간.
그는 지난해 3월 귀향한다. 고향에 내려온 그는 7개월동안 무작정 걸었다. 그러면서 제주 도심의 폐가를 찍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런데 고향은 그에게 두 가지로 다가왔다. 그 두 가지는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옛 도심이 20여년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점, 그대로이기에 정체된 것에 대한 가슴 아픔이 자리를 틀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자리한 곳은) 학창시절 매일 거치는 동네였죠.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던 제겐 고향 제주도는 휴가자 입장일 뿐이었죠. 내려와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28년간 떠나 살면서 원도심이 망가졌다는 걸 느끼질 못했죠. 살기 위해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일테죠. 어떤 형태이든 원도심에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지금까지 고향을 그리운 기억의 땅으로만 간직해왔다. 막상 내려오니 그야말로 원도심은 변하지 않는 망가짐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했다. 그가 택한 건 사람들이 자주 오갈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래서 택한 게 게스트하우스였다. 그는 올해 2월 해짓골의 오래된 2층 주택을 임대했다. 긴 복도를 중심으로 방이 배치돼 있어 게스트하우스로 쓰기엔 제격이었다. 주택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뜯어진 문짝 등을 고쳐나갔다. 그는 혼자 힘으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그러다 상량문이 붙어 있는 천장 안쪽에서 1968년 이 집의 설계도면이 발견된다. 청사진을 구워 두꺼운 종이에 붙인 설계도면으로 아주 귀중한 도면이었다.

신창밤씨가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려고 내부를 수리하면서 발견한 설계도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호사카 류이치가 기본 설계를 했어요. 실시설계는 제주 건축의 1세대인 김한섭의 손이 닿았어요. 2005년부터는 아무도 거주 하지 않아서 문짝이 많이 상했어요.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낡아버린 문짝과 전등, 비 새는 곳만 손을 봤어요.”

이 곳 게스트하우스가 정식 운영된 건 2개월 남짓이다. 이 기간동안 찾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애초 그가 생각한 목표와도 연결이 된다. 옛 도심을 제주여행의 중심지로 만들어보겠다는 작은 소망이 이제 출발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옛 도심을 살리는 선구자 역할까지 자임하고 있다. 주변에서 사업을 하거나 게스트하우스를 꿈꾸는 이들에게 원도심에서 하라고 권유를 한다. 그렇게 해서 사업을 하는 이도, 또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옛 도심이 게스트하우스의 촌락으로 형성되길 바라요. 술집이나 모텔보다는 낫겠죠. 이 곳을 들르는 이들이 먹거리를 찾고, 구매 수요도 있을테고. 그러면 자연스레 옛 도심이 살아나리라 봐요. 그러나 무늬만 외국인인 이들이 너무 많아요. 외국인들이지만 90% 가량은 원어민 강사나 교환학생이라는 점이 아쉬워요. 이들이 해외관광객으로 추가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비앤비판 게스트하우스 1층 복도.
그는 작은 것을 통해 커다란 변화를 꿈꾼다.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외국인들이 자주 찾게 되면 자연스레 옛 도심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제주도정은 이웃한 곳에 대규모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볼거리는 만드는 것만 중요한 건 아니죠. 400억원을 들여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한다는데, 그렇다고 뭐가 바뀔까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다른 접근을 해야죠. 옛 도심이 가진 기존 시설에 콘텐츠를 입히는 게 더 중요하죠. 역사도 없고, 기억도 전무한 사업들만 늘어놓을 필요가 없죠. 그 돈이면 75년간 전세계적인 락페스티벌을 하겠어요. 세계인들이 매년 올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요? 왜 개발독재 방식을 고집하려는 지 알 수 없네요.”

원 도심에 묻어난 숱한 기억과 역사들. 그런 기억과 역사성이 없는 콘텐츠만 만들어낸다면 제주를 찾는 무늬만 외국인처럼 옛 도심에서 벌어질 각각의 볼거리들이 무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다. 제주도정이 그의 목소리를 한번쯤은 경청했으면 한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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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2012-10-08 17:09:03
공감합니다.
바르고 맑은 일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혜안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선생님이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