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제주미래의 희망’- FTA 위기, 기회로 극복한다 <19> 김대길 회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이미 발효됐고, 한·중FTA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시장 개방화시대를 맞아 1차 산업엔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제주경제를 지탱하는 기둥 축인 감귤 등 농업 역시 위기감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FTA는 제주농업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 결코 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다. 제주엔 선진농업으로 성공한 농업인, 작지만 강한 농업인인 많은 강소농(强小農)이 건재하고 있다 감귤·키위·채소 등 여러 작목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다. 이들의 성공비결은 꾸준한 도전과 실험정신, 연구·개발이 낳은 결과이다. FTA위기의 시대 제주 농업의 살 길은 무엇인가. 이들을 만나 위기극복의 지혜와 제주농업의 미래비전을 찾아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제주도내 농·축산 모든 품목을 친환경으로 가야 앞으로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 제주도의 청정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 친환경 브랜드로 만들어야죠. 전 세계적으로 이를 인식시킴으로써 도내 산업과 환경이 먼 훗날까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40여 년 동안 농업에 종사하면서 구좌읍 세화리에서 25년째 친환경 당근 재배를 꿋꿋이 실천하고 있는 김대길 당근유기농인증농장 대표(74).
30대 초반 ‘정희식품’이란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무·당근·양파 등을 자가생산하기 위해 밭 500평에서 봄·가을 당근을 재배하기 시작한 게 당근 농사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밭에서 생산된 당근은 가게에서 팔고 나머지는 제주시내 동문시장에 납품했다.
“처음엔 재래식으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학교·읍사무소 등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인분과 오줌을 수거해 숙성한 뒤 드럼통으로 실어 밭에 뿌렸죠. 구좌읍 등 도내 동부지역이 당근 주산단지가 된 건 80년대에요. 그 때부터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김 대표는 동부지역 당근 친환경재배의 선구자로 불린다. 처음으로 유기농 당근 재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친환경농업과 관련된 단체 활동도 열심히 해오고 있다.
현재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오름 밑에 있는 밭 4500평에서 생산되는 당근은 ‘한약을 먹은 당근’이라 할 정도로 철저한 친환경재배의 산물이다.
김 대표는 친환경 자재인 생선액비와 청초·해초액비, 살균·살충제를 스스로 개발해 만들어 밭에 쓰고 있다.
생선액비는 생선을 가공한 나머지를 수거해 액비와 흑설탕을 섞어 숙성시키고, 청초·해초액비는 쑥·어성초·국화·세비듐·너삼 등 5~12가지를 숙성시켜 액비를 만들고 있다.
살균제는 마늘과 협죽도 등을 숙성시켜 만들고, 토양살충제는 담뱃잎을 말려 바닷물에 2~3년 담그고 가라앉게 한 뒤 나온 니코틴으로 만든다.
이렇게 무농약으로 생산된 당근은 전량 학교급식 납품업체에 공급하고 있다.이곳에 생산돼 나가는 당근은 20㎏들이 1700상자로 3000만 원어치 정도 된다.
“친환경농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판로난을 우선 꼽을 수 있어요. 생산품이 거의 학교급식 쪽에만 한정되고 있기 때문이죠. 친환경 유기농생산품은 가격이 관행농업과 차별이 되곤 있지만 생산비율이 적다는 게 아쉽죠. 더욱이 기름과 자재 값이 계속 오른 것도 부담이에요”
현재 친환경·유기농업은 관행(일반)농업보다 같은 면적에서 생산량이 35~45%에 지나지 않고 있다. 당근 값은 20㎏기준으로 일반재배는 2만원이라면 유기농재배는 2만3000~2만4000원 정도 차이가 있다. 받은 값 차이 비율이 생산비율보다 적은 게 현실이다.
때문에 구좌·성산·표선 등 동부지역 당근 주산지에서 친환경 재배면적이 크게 줄고 있다고 김 대표는 전한다.
어려움은 이뿐만 아니다. 도내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당근을 공급받고 있는 학교급식 납품업체들이 거의 영세해, 납품대금 결제를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대구로 보낸 당근 750상자 분 값을 받지 못해 법적수속에 들어갈 판이에요. 생산농가와 납품업체 사이에 믿음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문제죠. 내년부터 대도시 학교급식에도 친환경농산물이 들어가게 돼 판로난이 다소 풀릴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어요”
친환경농업에 대한 김 대표는 나름대로 건설적인 생각과 지론을 주장한다.
“친환경 생산품과 관행농업 생산품의 값은 똑같이 가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국민들이 친환경농산물을 싸게 먹을 수 있어요. 친환경농산물을 많이 먹으면 그만큼 국민건강이 좋아지고, 국민이 튼튼해지면 나라도 튼튼하게 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겁니다”
김 대표는 현재 행정기관 등에서 하고 있는 보조가 친환경과 관행농업 차별이 있지만 이를 더욱 친환경 많이 줘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야 친환경 쪽으로 농업이 많이 전환할 수 있고, 그만큼 친환경농업이 많아지면 값도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당근재배 1호’란 별명도 있는 김 대표는“농약과 화학비료가 땅을 산성화하고 바다와 지하수가 오염되지 않도록 반드시 친환경 농업을 해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친환경농업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김 대표의 든든한 후원자는 역시 부인이다.
“아내가 밭에 제초제를 뿌리고, 밭때기로 팔면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다투기도 했죠. 지금은 오히려 아내가 당근 등 친환경 재배에 더욱 관심을 갖고 돕고 있어요”
김 대표의 부인 김정희씨(67·전 북제주군여성단체협의회장)는 당근요리연구회를 만들어 친환경 당근 파치를 이용한 고추장·잼을 만드는 일에 나서고 있다.
당근 친환경 농업의 전망에 대해 김 대표는 “학교급식에 친환경농산물이 들어가는 등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봐요. 무엇보다 정부시책이 친환경 농업을 유도할 수 있도록 농가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죠”
FTA와 관련 김 대표는 “과수농가만 보호하려고 하지 말고 밭농사에도 마찬가지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해요. 중국산이 밀려들어오면 농민들은 갈 곳이 없게 되죠. FTA시대에 농가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해요”
국내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고 농약을 쓰는 중국산 당근을 사서 쓰는 식당은 이익을 볼지 모르나 그만큼 먹는 소비자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을거리가 건강해야 나라가 건강한다’며 친환경농산물로 차별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제주농업의 미래는 역시 친환경으로 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농약을 쓰지 않은 농축산물로 대응하는 게 제주농업의 갈 길이에요. 외국산과 차별화하는 교육과 홍보가 필요해요. 농협 등에서도 해야 할 일이지만 학교에서 일주일에 1~2차례 친환경 당근주스를 먹이는 것도 한 방법이죠”
유기농협회, 친환경농업인제주도연합회 등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하며 구좌읍친환경농업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2011년 ‘자랑스러운 농업인상’ 친환경농업부문 유기농대상을 받았다.
“어디가든 바른 말을 잘한다는 말을 듣죠. 정직하게 사는 게 생활신조라고나 할까요”
<하주홍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