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솔로몬의 판결은 아니더라도...'
'솔로몬의 판결은 아니더라도...'
  • 장금항 객원필진
  • 승인 2007.01.19 14:18
  • 댓글 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칼럼]장금항 상명교회 목사

연말과 연초의 들뜬 기운이 가시고 난 뒤 제주의 풍광이 누렇다.

태초에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땅은 아래에 있어 그 빛이 누랬다(천지현황天地玄黃)하니 지금 우리가 보는 누런빛이 어지럽히는 색이 가신 제주 본래의 것이다. 누런빛과 바람으로 가득 찬 바다에 인간 존재의 서늘한 외로움을 그렸던 변시지의 그림을 보기에 좋은 때이다.

검박한 초가와 무심한 바다에 조랑말과 돌담, 까마귀와 소나무, 비 모든 것들을 몰아치는 폭풍, 하늘과 대지를 뒤섞는 누런 빛, 여기에 고졸한 먹선 하나를 그어 ‘길 없는 길을 가야함에 지친 듯한 가냘픈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 변시지의 그림이다. (변시지 고희기념집「폭풍의 바다」중 서문)

존재의 비애와 고독감을 드러내는 변시지의 방식은 적막하고 평화롭다. 그리고 그 적막과 평화는 예술의 구도적 순례 속에서 완성된 누런 빛 속에서 구현된다. 하얗던 억새가 지고 난 지금 제주의 누런빛이 인생과 종교의 원형적 형상이라 연초에 침묵하고 나약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세상이 시끄러워 수행을 지속할 수 없었다. 요새 웰빙 바람이라 술을 덜 먹은 탓인지 연초부터 말이 많다.

그 중 ‘석궁 테러’의  발단이 되었다는 성균관대 1995년 수학 본고사 7번 문제는 그 중에 압권이었다. 김영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는 이 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15점이나 배점된 이 문제의 만점처리를 주장했으나 출제교수와 학교 측은 채점을 강행했고 이듬해 재임용에 탈락되었다. 김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고 이 문제는 단박에 회자되었다.

'영벡터가 아닌 세 공간 벡터 a, b, c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하여 |xa+yb+zc|󰀄|xa|+|yb|을 만족할 때 a,b,c가 서로 직교함을 증명하라'는 기호와 같은 이 문제는 당연히 재판부도 처음에는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기관은 답변을 회피했고 이 와중에 이 사건의 분질은 교수재임용의 적법절차에 국한되게 되었다. ’공간벡터 a,b,c 모두 영벡터가 아니고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 오류를 가지고 있던 이 문제는 고등학생인 수험생이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고차원적 정리를 동원한 학교 측의 해명으로 무마되고 ‘연구실적 미비’와 ‘비정상적인 성격 때문’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학의 주장을 재임용 탈락 이유로 법원이 받아들이므로 김씨는 자신이 ‘입시문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에서 탈락 당했다는 억울한 감정을 풀지 못했다. 「한국일보」2007년 1.16

44개 대학 189명의 수학교수들이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김씨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연판장을 재판부에 제출했고 97년 과학저널 「사이언스」까지 이 문제를 지적하였으나 임명권자의 인사문제로 이미 재판을 국한한 재판부는 이를 무시하였다.

처음에 위의 문제를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재판부가 의견을 구할 때는 문제오류지적에 대한 보복성 인사가 중심이었지만 학문적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위계질서만을 중시하는 경직된 교수사회와 거대 대학의 폐쇄성은 이것을 개인적인, ‘비정상적인 성격’문제로 몰았고 형식 논리를 중시하는 법원은 개인의 심정보다 제도화된 대학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판결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사건의 본질을 흐린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재판은 끝났고 ‘개인의 심정’을 밝혀줄 방법은 없는 것이다. 김지사 재판의 선고일이 곧이다.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말때문인지 검사가 혐의를 입증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사안의 차이는 있지만 증거가 분명하다고 하니 혹여 재판부가 ‘도민감정’, ‘도민정서’운운하며 납득 못할 판결을 하지 않기 바란다.

꼭 판사들의 좁은 소견과 무소신을 염려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증거와 정황을 두고도 지엽적 문제를 인하여 정죄하지 못하는 누를 범치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김씨사건의 경우처럼 형식논리대로라도 눈앞의 증거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천지현황의 단순한 논리가 본질을 흐리는 말의 숲에 가려지지않고 명쾌한 판결이 나기를 도민들은 바라고 있다.  도민들은 재판부의 타당한 판결을 기대한다.

<상명에서 장금항 목사>

#외부원고인 '미디어칼럼'은 미디어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2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禎存 2008-05-15 16:16:31
comment2,

禎存 2008-05-15 16:16:27
comment3,

禎存 2008-05-15 16:16:21
comment5,

禎存 2008-05-14 19:20:07
comment2,

禎存 2008-05-14 19:19:46
comment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