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일년 중에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때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뒤떨어질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라도 어김없이 공원이나 유원지, 놀이터마다 많은 행사들이 벌어진다.
그동안 무관심하고 서운했던 것을 하루에 다 갚아야 하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부모를 잃어버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잠시동안 걱정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하루에 20-30명의 어린이들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학대받고 방치되는 어린이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최소한 3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가난으로 생계조차 잇기 어려워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되고, 결국은 가족동반자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경찰청의 공식집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가족동반자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하고 아쉬워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흔히들 ‘사회 안전망’이니 ‘사회복지제도’가 어떻다 하지만, 과거 더 어려운 시절에도 아이들만큼은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소득 1만불을 넘어 2만불을 이야기하는 지금에 이르러 왜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대부분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 깔려있다.
“아무도 돌볼 사람 없이 아이들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해도, 고생할 것이 뻔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최우선의 조건을 물질(돈)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부모도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이웃)에 대한 불신이 문제이다. 나아가 생명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이웃인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어떤 생명도 희망을 품고 있다. 그 희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희망과 미래의 가능성과의 단절이다.
왜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인가? 그 생명력을 통한 희망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명을 파괴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월 우리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자연(환경)은 생명을 품고있는 터전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즐기는 그 곳에서 생명을 느끼도록 하자.
아름답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과 형형색색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고, 한편으로는 파괴되고 있는 곶자왈과 골프장 건설로 인한 지하수의 고갈과 오염의 문제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면, 그렇게 해서 우리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그를 통해서 부모(어른)로서도 잃어버렸던 생명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면, 5월에 부르는 노래처럼 우리의 삶은 푸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명은 본능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는 의미를 되새긴다면, 생명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가 물질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한번 삶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근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