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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지사 ‘어공’ 발언, 공직사회 혁신 의지 퇴색 우려
원희룡 지사 ‘어공’ 발언, 공직사회 혁신 의지 퇴색 우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11.17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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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窓] 도정질문 답변 중 나온 원 지사 발언에 대한 반론
“개방형 직위로 컴백한 선거캠프 출신 인물들이 ‘어공’이라고?”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이 분들은 직업 공무원이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어공’에 해당합니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입니다.”

제주도의회 도정질문 첫날인 지난 16일, 첫 도정질문에 나선 김희현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일도2동 을)이 지난 6.13선거 직전에 서울본부와 제주연구원, 도 공보관 등 자리를 그만두고 나갔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복귀한 것을 두고 지적한 질문에 원희룡 지사가 내놓은 답변 이다.

김 의원은 원 지사의 이 답변에 “참 내…”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의원들 사이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김 의원은 원 지사에게 “개방형 직위 공모를 활용해서 선거 공신들을 운용하고 있다”면서 지방선거 전 올 2월부터 5월까지 사직한 9명이 서울본부와 제주연구원, 공보관실에 다시 채용된 부분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원희룡 지사가 지난 16일 제주도의회 본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도정질문에 대해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원희룡 지사가 지난 16일 제주도의회 본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도정질문에 대해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이에 원 지사는 “정무직 성격의 보좌진이 필요하다. 공보관과 서울본부 보좌진들은 저와 진퇴를 함께 하는 최소한의 인원”이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김 의원은 “공보관은 정무직 성격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나머지 6급 직원들을 어떻게 정무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원 지사는 김 의원의 계속되는 추궁에 “이 친구들은 직업 공무원이 아니라 국회 보좌관 출신”이라면서 “국회에 대한 협상창구 역할을 하는 인력들”이라고 설명하면서 직업 공무원이라면 선거 전에 그만두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그런 행태를 보일 수 없는 일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이에 김 의원이 “이 분들이 직업 공무원이 아니라는 거냐”고 따졌고, 원 지사는 이들이 직업 공무원이 아니라 ‘어공’이라는 논리를 들이댄 것이었다.

두 사람의 문답 과정을 자세히 풀어쓴 이유는 원 지사가 자신과 자신의 선거캠프 공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어공’이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맥락을 정확히 짚기 위해서라는 점을 밝혀둔다.

그렇다면 여기서 원 지사가 얘기한 ‘어공’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 살펴보자.

물론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이 ‘어공’과 ‘늘공’이라는 표현을 다르게 쓸 수도 있기는 하다.

일반적으로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을 줄인 말로 대부분 학자 등 외부 출신 전문가들이 고위 관료로 발탁된 경우를 가리키는 속어로 쓰인다. 대비되는 표현으로 ‘늘상 공무원’인 직업 관료를 칭하는 ‘늘공’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외부 출신 전문가’라는 대목이다.

애초 원희룡 지사가 2기 도정을 출범시킨 후 첫 인사를 단행하면서 공직사회 혁신을 위해 개방형 직위 공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취지대로라면 이후 개방형 직위로 채용된 고위직 공무원들이야말로 ‘어공’에 더 가깝지 않을까.

더구나 ‘어공’과 ‘늘공’은 일하는 데 있어 동기가 부여되는 방식도 큰 차이를 보인다.

‘어공’이 도지사와 자신의 정책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새로운 접근방식을 도모하는 목표 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늘공’은 상대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수단의 정당성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솔직히 많은 공무원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어공’은 ‘늘공’에 대해 복지부동, 철밥통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비판하고, 반대로 ‘늘공’은 ‘어공’이 현실을 보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적어도 이 정도의 ‘어공’과 ‘늘공’ 구분법에 대해 동의한다면, 이번 도정질문 답변에서 원 지사가 선거캠프 출신으로 개방형 직위 공모를 통해 컴백한 인물들을 ‘어공’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나름 소신을 갖고 개방형 직위 공모에 참여해 자신의 정책 구상을 구현해보고자 하는 자칭 ‘어공’들의 사기를 꺾어놓는다면, 자칫 민선7기 원 도정이 천명한 ‘공직 혁신’이라는 목표를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어버리지 않겠는가.

더구나 7000여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이 원 지사의 이같은 공무원에 대한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백번 양보해서 원 지사 말대로 선거캠프 출신 인사들이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공’이라면 이날 김 의원 지적대로 선거 전에 그만두고 나갔다가 개방형 직위 공모를 이용해 다시 같은 업무로 복귀시키는 건 이 제도의 취지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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