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 훈련 때 지겹도록 울리던 그 사이렌은 왜 안울렸을까.'
제11호 태풍 '나리'가 제주를 강타한 16일. 새벽 3시 태풍경보가 발령된 후 제주지방에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많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전 시간대 제주시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250mm를 넘는다. 이날 하루 제주시에는 공식적으로 420mm의 비가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오전 시간대 집중적인 폭우로 인해, 이미 하천범람과 도로침수는 사실 예견됐다. 문제는 제주특별자치도 재난상황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가다.
태풍경보가 발령된 후인 새벽 3시 제주특별자치도는 전 직원에게 비상근무를 명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주시 지역의 어느 동사무소에서도 민방공 대피훈련과 같은 비상방송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각 언론사에 재해경보를 알리는 '자막방송'을 해줄 것을 요청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대규모 정전 등이 발생한 시간대에. 정전된 상황에서 TV완 인터넷을 통해 재난경고방송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꼭 원칙을 따지거나, 법률에 의거해 기본적 조치는 취했다고는 하지만, '위험 속'에 빠진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제주도의 재해대응능력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오전시간대 집중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이미 하천이 범람하고, 범람한 하천물이 도로로 역류하면서 도심지가 물 속에 잠길 우려가 있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침수가 발생할 경우, 신호등이 부숴지고 정전 등이 발생할 경우 휴일 도심지 교통은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정작 시민들이 필요할 때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은 긴박하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상습 침수지역을 중심으로 해 배치가 이뤄졌을 뿐이다. 하다 못해 읍.면.동별 침수가 이뤄지는 곳에 배치돼 적극적으로 교통을 통제하고, 상가나 주택 등 침수 우려지역을 돌며 재난의 위험을 알리려 하지도 않았다.
낮 12시, 한천 등 복개천 주변을 중심으로 해 범람한 물이 주변 주택가와 상가를 휩쓸 때에도 동사무소의 비상방송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흔한, 민방위 훈련 때 노란 완장을 착용한 민방위 관계자나 공무원들도 주요 지점에 배치되지 않았다.
신호등이 부서진 교차로에는 차량들이 서로 엉퀴고, 급류를 피해 이리저리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정작 그 많던 공무원, 경찰, 의경 하나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았다.
평소, 교통 집중단속이나, 민방위 훈련 등 때에는 그 많게 보이던 경찰과 공무원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제주특별자치도는 비상 긴급회의를 몇차례 했고, 몇건의 인명구조요청을 받아서 처리했고, 몇건의 침수지역에 대응했는지를 수치적으로 논할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재난경계시스템이 제대로 됐는지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인데, 원칙은 내세우고,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은 필요없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도심지가 갑자기 물에 잠기자, 공무원은 보이지 않고, 일부 시민이 차량 운전자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흘리며 동분서주하는 모습, 시민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재난대비시스템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시민들의 마음은 똑같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행정이 제때 달려와주고, 비상상황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소시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아닌가.
정작 어려울 때에는 아무리 찾아도 오지않고, 동사무소에서 사이렌 소리 한번 울려주지 않는 재해, 그 많던 7000여명의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들은 다 어디에 있었는가. 또 홍수와 교통대란 속에서도 단 한명의 경찰도 배치되지 않은 교차로 지점이 많았다고 하는데, 경찰관들은 다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평소 민방위훈련 때에는 잘 울리던 사이렌 소리는 왜 울리지 않았던 것일까.
제주특별자치도의 재난대응시스템, 이번 제11호 태풍 '나리'를 계기로 제대로 평가해볼 일이다.
<윤철수 / 미디어제주 대표기자>
몸이 열개라도 부족했었습니다 누구를 탓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