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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 100억원 건물이 아니야”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 100억원 건물이 아니야”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3.28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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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중인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한짓골 사업, 환기하기 <1>
아름다운 제주도에 한없는 문화의 힘이 작용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또, 2019년은 제주4·3 71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제주에는 관련된 문화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음악으로, 그림으로, 글로, 몸짓으로… 예술인들은 각자의 재능으로 제주4·3과 대한독립의 가치를 표현한다.

왜 예술일까? 아마 문화예술이 가진 고유의 힘, 공감을 이끌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백범 김구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의 소원’이라는 글로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아래처럼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수록된 '나의 소원' 중 발췌

문화란, 이처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다. 팍팍한 내 삶과는 동떨어진, 팔자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란 말이다. 힘겨운 삶일수록,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는 그 어떤 명약보다 효과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가난할수록, 나이 많을수록 문화행사 관람 안 한다
아니, 어쩌면 "못 한다"

전국적으로 문화예술행사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사는 제주를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의 만 15세 이상 남녀 1만558명을 대상으로 한다. 조사원은 직접 조사대상자의 가구를 찾아 면접을 진행했다.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2012년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 (자료=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

사실, 그 누구보다 문화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삶이 무료한 노년층, 혹은 마음이 메마른 저소득층이다. 그런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문화예술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아래 표 참고)

전국 연령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나이가 많을 수록,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이 낮다. (자료=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전국 가구소득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소득이 높을 수록,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이 높다. (자료=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고령으로 갈수록, 저소득층일수록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저조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문화예술행사를 즐기는 범위는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아래 표 참고)

문화예술행사에 대한 관람 의향률 조사 결과, 영화를 제외한 순수예술 분야에는 사람들의 관람 의향이 거의 없음을 알수 있다. (자료=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

조사에 의하면, 문학이나 미술, 서양음악, 전통예술, 무용 등 순수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람 의향률은 매우 낮다. 이는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 외에,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에는 관심이 적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제주는 어떨까?

제주의 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률은 전국 평균(81.5%)보다 낮은 76.7%를 기록한다. 전국에서 5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타 지역에 비해 문화예술행사를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주에는 무료 공연도 많고, 무료 전시도 굉장히 자주 열리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접근성’을 주제로 서술해보겠다.

 

문화예술공간, 내 삶의 터전과 가까워야 좋다

대다수의 도시가 그렇듯 제주의 문화예술공간은 도심 지역에 밀집해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시내권으로 분류되는 지역에는 제주도 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예술의전당, 영화관 등이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귀포나 모슬포, 조천 등 도심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주민이 문화예술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공간을 일부러 찾는 행위는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매우 피곤하기도 하고.

게다가 주차하기도 힘든 시내 권이라면? 더더욱 방문할 엄두가 안 나지 않을까.

이처럼 제주의 도심지 외에 거주하는 도민들은 문화예술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게다가 읍면지역에는 고령의 도민이 많은데, 평소 문화예술을 많이 접하지 않은 이들은 더욱 문화 향유의 자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매입을 추진 중인 제주시 삼도2동 소재 재밋섬 건물. © 미디어제주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매입을 추진 중인 제주시 삼도2동 소재 재밋섬 건물. © 미디어제주

이런 상황에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추진 중인 (가칭)한짓골 아트플랫폼 조성사업(이하 한짓골 사업)은 당위성을 잃는다.

제주 지역 곳곳에 지역민들이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많아야 하는데, 이와는 반대로 가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한짓골 사업은 제주시 원도심에 위치한 구 아카데미 극장을 100억원에 매입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공공 공연연습장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데, 연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의 리모델링비가 예상된다.

문화예술공간이 거대한 건물일 필요는 없다.

서귀포의 시골 마을에 있는 옛 귤 창고를 개조해 마을 사람들의 문화예술공간이자 아지트로 사용 중인 ‘몬딱’. 무용 연습실과 문화교실로 변신할 애월 상가리 마을의 ‘문화곳간’.

이처럼 지역 주민들과 예술인이 함께하는 작은 공간이 많을수록 제주는 행복해질 테다.

할망도, 하르방도, 아방도, 어멍도, 아희도… 모두 함께 문화예술을 즐기게 될 제주의 모습.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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