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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9.15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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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예술재단이 규정을 해석하는 법,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 적용해야"
모아야 하는 '육성기금' 사용한다며 조례 어긴 재단, 성추행 직원 징계에서도 여전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으로, 정당한 근거 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가만 보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때가 왕왕 있다.

'1단체 1프로젝트'의 공모요강에서 벗어난 단체를 공모 사업 단체로 선정한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의 경우도 그렇고, 이번 기사에서 다룰 제주문화예술재단도 그렇다.

 

동료 직원 성추행한 제주문화예술재단 직원 A씨
재단 인사위, A씨에 중징계→경징계로 의결 조정

제주문화예술재단(이하 재단) 인사위원회가 동료 직원을 성희롱한 A씨에게 감봉 3개월 수준의 경징계 처분을 내리며, SNS와 각종 언론에서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 내용은 이렇다.

재단에 따르면, 재단 직원 A(남)씨는 지난 7월 2일 있었던 회식 자리에서 동료 직원 B(여)씨의 볼에 입을 맞추는 행위를 저질렀다.

이에 B씨는 7월 4일 재단 소속 직원인 고충처리위원에게 성희롱 사실을 알렸고, 재단 인사위원회는 두 차례 심의를 거쳐 가해자 A씨에게 정직 1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A씨는 중징계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고, 9월 4일 열린 제3차 인사위 심의에서 인사위는 당초 결정을 뒤집고 A씨에게 3개월 감봉 수준의 ‘경징계’ 처분을 내린다.

문제는 재단 인사위가 A씨에 대한 징계 의결을 번복하면서, 관련 내규를 어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있다.

재단은 인사관리 규정에 따라 징계 집행을 엄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징계절차 및 양정 등에 관한 내규’를 따로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내규의 ‘제17조 징계의 감경’ 조항을 통해 피의자가 징계 의결에 불복했을 때, ‘감경이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감경이 불가능한 경우’다.

내규 제17조 1항 일부를 살피면,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징계는 감경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인사관리 규정'에 따른 '징계절차 및 양정 등에 관한 내규' 중 제17조 내용. 

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해석하면, ‘성추행을 포함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인사위의 징계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감경을 받을 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경이 불가능한 ‘성폭력(추행)’ 행위를 저지른 A씨는 분명 당초 징계보다 낮은 수위로 '징계 조절'을 받았다. 어찌된 일일까.

 

'피해자에게 사과했기 때문에' 중징계 내렸다는데... 
가해자가 '사과 확인서' 제출했으니 '경징계' 조절?

9월 15일 예술공간 이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경대 이사장이 '재단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재단 내 성추행 사건에 대해 고경대 재단 이사장은 9월 15일 일요일 오전 11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사위원회 결정에 재심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 이사장은 인사위원회의 징계 의결서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고 이사장에 따르면, A씨에 중징계 처분이 내려진 당초 의결의 근거는 ‘가해자(A씨)가 피해자(B씨)에게 사과했기 때문’이다.

또 고 이사장에 의하면, A씨에 대한 처분이 경징계로 조절된 이유는 ‘가해자(A씨)가 피해자(B씨)에게 사과를 했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 사과 확인서'가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서면 확인서'에는 피해자 서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가해자가 직접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서명을 받아낸 것이라고 한다.

즉, 가해자 A씨에게 내려진 중징계 처분이 재심의를 거쳐 경징계로 조절됐지만, 두 처분의 궁극적인 근거는 동일한 셈이다. 중징계를 내린 이유도, 경징계를 내린 이유도 모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았다"라는 확인서에 사인을 했을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B씨 입장에서는 2차 피해로 느껴질 수 있는 확인서다.

이러한 확인서를 재단 인사위가 의결 조정의 근거로 채택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내규 위반 의혹 제기에 재단 측, "2차 인사위와 3차 인사위는 '별개의 안건'"
재단, 규칙 및 규정 사이 존재하는 '구멍들'에 보다 엄격한 잣대로 해석해야

재단 인사위가 A씨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춘 까닭에는 ‘피해자에게 사과했기 때문’이라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담겨 있었다.

이와 관련, 고 이사장은 △인사위 결정이 내규 위반을 한 점이 있는가 △중징계가 경징계로 바뀌었지만 두 의결의 근거가 동일한데 문제가 없는가 등에 대해 재심사 요구로 밝힐 예정이다. 재심사는 기존 재단 인사위원회 위원들이 진행하며, 9월 셋째 주 중 완료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기사 서두에서 밝힌 ‘내규 위반' 의혹에 대한 재단 입장을 들어보자.

재단의 ‘징계절차 및 양정 등에 관한 내규’에 따르면, 이번 사안은 명확하게 징계 감경이 불가능한, ‘성폭력(추행)’ 사건이다. 그런데 인사위는 A씨에게 내려진 중징계를 경징계로 조절하며, 결과적으로 감경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에 재단 인사위는 ‘해석의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인사위는 2차 인사위원회 때 내려진 ‘중징계’ 결정과, 3차 인사위원회 때 의결된 '경징계' 결정을 ‘별개의 심의’로 본다. 2차 인사위는 피해자의 신고로 이뤄진 의결이었고, 3차 인사위는 가해자의 재심의 요청으로 진행된 안건이기 때문에 별건으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느낌이 만연하지만, 어찌 됐건 인사위의 해석대로라면 이번 사안은 '감경'이 아닌, '심의에 따른 최종 의결'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고 이사장은 “인사위에서도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거쳤고, (2차와 3차 심의를) 별개로 보자고 해서 (최종 경징계로) 결정이 났다”라고 부연했다.

한편, 재단의 이러한 일종의 ‘자의적인 규칙 혹은 규정 해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논란이 일었고, 지금도 검찰 조사 아래 현재진행형인 ‘(가칭)한짓골 아트플랫폼 조성사업’ 때도 그랬다.

작년, 제주문화예술재단(이하 재단)은 삼도이동에 위치한 ‘재밋섬’ 건물을 100억원에 매입하겠다고 밝히며, 필요한 자금은 ‘육성기금’으로 충당하겠노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육성기금을 건물 매입에 사용하는 것은 ‘조례 위반’에 해당된다.

재주문화예술재단의 기본재산 목록. <br>​​​​​​​재단은 현금 약 170억원 중, 113억원을 한짓골 아트플랫폼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재주문화예술재단의 기본재산 목록. 재단은 현금 약 170억원 중, 100억원을 재밋섬 건물 매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로지 건물 가격이며, 리모델링 비 약 6~70억원 및 부가세 등을 포함하면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재단의 조례에 따르면, 육성기금은 “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소요되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설치된 기금"이며, 2020년까지 300억원 조성을 목표로 ‘모아야 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단은 작년 6월, 건물 매입을 위한 1차 중도금 10억원을 ㈜재밋섬파크 측에 건넸고, 재밋섬 건물이 ㈜재밋섬파크가 아닌, 은행에 신탁되어 있는 까닭에 ‘위험한 계약’이라는 비판도 얻게 됐다.

한짓골 아트플랫폼 조성사업은 △비상식적인 계약서(1원 계약금, 20억 계약해지 위약금 조항) △공론화 과정의 부재 △사업을 급히 진행하려다 건물 매입비(부가세)가 부족하게 된 점 △주차난이 심한 지역임에도 ‘인근지 주차장’을 빼고 부동산을 거래한 점 등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현재 표류 중이다. 재단 측은 정의당의 관련자 고발에 따른 검찰 측 입장이 나오면, 사업에 대한 ‘타당성 심의위원회’를 꾸려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정해진 절차, 적법한 규칙 사이 존재하는 '위법과 편법'의 구멍들. 그 구멍을 재단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두 사건이다.

법대로, 절차대로, 투명하게, 보수적으로 행정을 집행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의혹들.

이번 성추행 사건에서 고경대 이사장이 인사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한 만큼. 가해자 A씨에 대한 징계 절차 전반과 인사위의 내규 위반 여부는 물론, 한짓골 사업의 진행 여부까지. 재단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기준삼아 일을 집행했으면 한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할 땐 보수적인 사고로, 보수적인 잣대가 필요할 땐 유연한 잣대로. 입맛대로 해석하는 모양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주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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