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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배우고, '관광통역안내사' 꿈 갖게 됐어요"
"한국 역사 배우고, '관광통역안내사' 꿈 갖게 됐어요"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9.09.30 15: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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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2019 이주여성 제주역사문화탐방> 개최
3.1운동 100주년, 제주 항일운동의 발자취 따라 걷기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비 소식이 예고되어 있었지만, 우산 펼칠 일 없이 햇살이 따스했던 날.

9월 28일 <미디어제주>와 제주글로벌센터 가족이 함께하는 ‘이주여성 제주역사문화탐방’이 진행됐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의 주제는 좀 더 특별하다. 바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제주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기 때문.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제주항일기념관이다.

이주여성들에게 제주의 항일운동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해설사의 모습.
이주여성들에게 제주의 항일운동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해설사의 모습.

“제주의 항일운동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요, 법정사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이 그것입니다. 특히 제주항일기념관이 있는 이곳 조천은 제주 항일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1919년 조천 지역을 중심으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차에 걸쳐 3.1운동이 일어났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주여성들은 제주의 3.1운동, 그리고 아픈 대한민국의 역사 이야기를 배운다.

특히 이날은 베트남에서 온 이주여성이 많았는데, 베트남은 분단의 고통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픈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이주여성들은 장장 40여 분 동안 이뤄지는 해설사의 설명에도 지루한 기색이 없었다. 한국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 제주 최초의 여성 교육감 최정숙의 삶 등 꽤 수준 높은 질문들도 이어졌다.

베트남에서 10년 전 제주로 이주한 32살 박가인씨.

“저는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과 베트남은 겪었던 아픔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관심이 가요. 오늘 (역사탐방에) 놀러 온 것도 저희 아이들과 함께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서예요. 아이들이 10살, 8살인데 제가 한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자리가 있다면 열심히 참여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 말이죠.” / 박가인(32, 베트남에서 10년 전 제주로 이주)

한눈에 봐도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박가인씨는 22살 때 한국에 왔다. 제주에서 남편을 만나 두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꿈도 생겼다. 바로 ‘관광통역안내사’다.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어요. 제가 나고 자란 고향 베트남,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고향 한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요. 그래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에요.” / 박가인

김나연(8) 어린이가 제주항일기념관에서 탁본 뜨기 체험을 하고 있다.

제주항일기념관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친 뒤, 이동한 곳은 제주해녀박물관. 예로부터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던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조명하는 곳이다.

해녀들의 공동 투쟁은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의 횡포에 반발하는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조합장은 제주도지사가 겸임하는 형태였는데, 일제 치하에 있던 탓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1930년과 1931년 성산포와 하도리에서 조합이 경매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후 해녀들은 공동 투쟁을 결의하게 된다.

당시 해녀들이 조합에 요구한 내용을 보면, 매우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해녀들의 요구사항>

일체의 지정판매를 절대 반대한다.

일체의 계약보증금은 생산자가 보관하도록 한다.

조합의 재정을 공개하라.

미성년자와 40세 이상의 해녀들에게는 해녀 조합비를 면제하도록 한다.

출가증은 무료로 내어 주어라.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입어를 못하는 자에게는 조합비를 면제시켜라.

총대는 마을별로 선출하도록 하라.

악덕 상인을 옹호하는 승전(升田) 서기를 즉각 면직시켜라.

도사(島司)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등

세화리 장날(세화5일장) 때 해녀들의 시위를 재현한 모형.

해녀들의 첫 시위는 1932년 1월 7일 세화리 장날 때 이뤄졌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장날은 해녀들의 목소리를 제주 전역으로 확산시키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월 12일 세화리 장날을 기점으로 시위는 대규모 시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결국 제주도지사와 해녀대표가 만나 해녀들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일제가 아니었다. 일제는 해녀들의 시위운동을 조사하며, 제주도내 청년 운동가들을 마구 검거하기 시작했고, 해녀들은 이를 막기 위해 또다시 시위를 전개한다.

해녀들의 시위는 1월 27일 종달리에서의 시위를 끝으로 일제에 의해 진압되었다. 1932년 약 한 달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된 항쟁이었다.

보훈청에 따르면, 연간 1만7130명이 238회의 집회와 시위를 전개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의 어민운동이자 1930년대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기록된다.

유나연씨와 아이들. 나연씨 왼쪽이 김나연(8), 오른쪽이 김지환(9).

“제가 제주로 이주한 지 10년째인데요. 해녀박물관에는 처음 와 봤어요. 제주 여자들이 참 많이 고생했더라고요. 가정도, 생활도, 일도 모두 책임지고 희생한 해녀들.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어요. 제가 만약 당시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렇게는 못 했을 것 같아요.” / 유나연(32, 베트남에서 10년 전 제주로 이주)

10년 전 제주로 이주해 9살 아들과 8살 딸을 둔 유나연씨는 “남편의 고향이 평대리”라며 이곳에서 해녀들이 항일운동을 펼쳤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이 찡했다고 했다.

이날 역사탐방에 참여한 이주여성들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제주에서 살아온 여성들이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막상 제주해녀박물관을 방문해본 적이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거리가 멀어서, 혹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삶이 바빠서. 각자의 이유로 마음먹고 집을 나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관광통역안내사를 준비 중인 가인씨는 이러한 자리가 좀 더 자주 마련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한국어로 대화하며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 그는 2020년 열릴 <미디어제주>와 제주글로벌센터의 ‘이주여성 제주역사문화탐방’을 기다릴 테다.

'이주여성 제주역사문화탐방'에 참여한 여성들이 도포를 입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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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2019-10-03 21:24:48
우리나라에 이주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요즈음 우리 모두가 좀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때에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하는 기사네요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