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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사라지면 황량하고, 새들도 오지 않아요”
“나무가 사라지면 황량하고, 새들도 오지 않아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0.02.19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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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록을 원해요]
①나무와 생명을 사랑하는 임지인 어린이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지난 2015년 내놓은 연구보고서 <대도시 도심의 녹지와 건강>을 들여다보면 한 구획당 가로수를 10그루 더 심으면 연간 개인소득이 1만달러 늘거나, 평균소득이 1만달러 더 많은 동네로 이사했을 때의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나무를 포함한 녹지가 많다는 건 ‘삶의 질’이 그만큼 나아진다는 의미이다. 그것도 걸어서 다니는 가까운 곳에 녹지가 많이 있어야 한다. 서귀포시 도시 우회도로를 두고 이어지는 비판도 ‘삶의 질’이라는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서귀포시민들로 구성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관련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미디어제주>는 도심의 녹지를 제대로 바라보는 기획물 ‘우리는 초록을 원해요’를 준비했다. 서귀포 시민들이 왜 ‘녹지공원’을 바라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녹지의 가치도 다시 생각해본다. [편집자주]

 

1주일에 한번 책을 찾아 서귀포도서관 나들이

자동차보다는 나무와 풀 등 생명이 더 중요

소나무 숲과 잔디광장은 지인 어린이의 놀이터

우회도로를 만들지 않았으면 더 좋겠어요

서귀포시 도시 우회도로는 4.2km에 달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구간을 3곳으로 나눠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이 가장 먼저 진행되는 2구간은 1.5km로, 계획중인 우회도로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2구간은 특히 서귀포의 교육시설이 집중된 ‘교육벨트’이다. 6차선 35m의 도로가 생기면 서귀포학생문화원, 서귀포도서관, 서귀포외국어학습관, 제주유아교육진흥원 등 4개 교육시설이 곧바로 도로와 맞닿는다. 영역을 더 넓히면 서귀중앙여중, 서귀북초, 서귀포고 등의 교육시설도 6차선 도로의 가까이에 있게 된다.

올해 11살이 되는 임지인 어린이는 1주일이면 한번은 서귀포도서관을 찾는다. 자신이 읽을 동화책을 빌리고, 읽은 동화책을 반납하기 위해서이다.

임지인 어린이. 6차선 도로가 만들어지면 친구와 다름없는 먼나무는 사라진다. 미디어제주
임지인 어린이. 6차선 도로가 만들어지면 친구와 다름없는 먼나무는 사라진다. ⓒ미디어제주

임지인 어린이에겐 서귀포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놀이터나 다름없다.

“잔디에 누워 있기도 하고, 소나무 숲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해요. 엄마랑 도시락을 싸서 먹기도 해요.”

지금은 겨울이어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지만 곧 봄이 오면 서귀포도서관 앞의 소나무 숲과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의 잔디광장은 임지인 어린이의 놀이터가 된다. 경칩도 지나고, 춘분도 지나면 소나무 숲과 잔디광장은 임지인 어린이를 향해 늘 손짓을 해왔다.

하지만 임지인 어린이는 걱정이다. 자신이 놀던 놀이터가 사라질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나무를 뽑고 있으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엄습한다. 서귀포학생문화원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그 생각이다. 다행히 오늘은 아니다. 그런 때는 “휴~” 안도의 긴 숨을 뱉는다.

서귀포시 도시 우회도로는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을 관통하도록 계획돼 있다. 먼나무를 가장 좋아한다는 임지인 어린이는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미디어제주
서귀포시 도시 우회도로는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을 관통하도록 계획돼 있다. 먼나무를 가장 좋아한다는 임지인 어린이는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미디어제주

임지인 어린이는 동화책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좋아한다. 동화속 주인공 소피는 나무를 찾아 위안을 삼기도 한다. 어찌 보면 소피는 임지인 어린이를 닮았다. 지인이도 나무를 좋아한다.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에 있는 먼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먼나무에 오르면 동화속 주인공 소피처럼 화는 말끔히 사라진다. 임지인 어린이의 엄마인 최정희씨는 “여기 오면 지인이는 나무에 꼭 오르고, 나무를 안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무가 지인이의 벗인 셈이다. 그러니 도로가 나는 걸 걱정할 수밖에 없다.

나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잔디광장이 눈앞에서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11살 어린이의 입에서 ‘황량’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먼나무에 오르면 나무 꼭대기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보여요. 그런데 도로가 생기면 나무가 없어질테고, 그렇게 되면 황량해지고 기분도 안 좋아지겠죠. 새들도 많이 오지 않을 거예요. 잔디에 누울 수도 없어요.”

도로가 생기면 나무랑 스킨십을 해오던 즐거움은 사라진다. 먼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로 리스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럴 일도 사라진다. <서귀포신문> 어린이기자이기도 한 임지인 어린이는 ‘학생문화원 먼나무, 살리고 싶은 내 친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도시우회도로 공사에 대한 반대 입장의 글이다. 지인 어린이의 진짜 마음이 궁금했다.

임지인 어린이는 먼나무 열매로 리스를 만들어 집에 걸어놓곤 한다. 미디어제주
임지인 어린이는 먼나무 열매로 리스를 만들어 집에 걸어놓곤 한다. ⓒ미디어제주

“도로가 생기면 더 많은 자동차가 지나갈 겁니다. 그런데 자동차보다는 나무나 풀이 중요해요. 생명이 더 중요하잖아요. 도로를 만들지 않았으면 더 좋겠어요.”

충남 홍성에서 자란 임지인 어린이는 자연과 살아왔다. 4년 전 가족들이랑 서귀포에 내려와서도 자연이랑 살고 있다. 먼나무는 그래서 친근하고, 소나무 숲과 잔디광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요즘은 제주도 곳곳이 개발로 몸살을 앓는다. 가까운 곳에 나무가 있고, 나무에 기댈 수 있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개발이 곧 ‘좋은 삶’은 아닐텐데 말이다.

지인이 엄마는 야네카 스호펠트가 쓴 <가짜 나무에 가까이 가지 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다. 물론 책 내용을 지인이와 주고받았다. 책은 지인이 또래의 어린이들이 현대화되는 공원을 막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화려한 개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자연’과 거기에 담긴 생명의 가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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