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54 (금)
“도심을 관통하는 큰 도로가 반드시 필요한가요”
“도심을 관통하는 큰 도로가 반드시 필요한가요”
  • 김형훈
  • 승인 2020.03.23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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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록을 원해요]
⑤ 세 아이를 둔 서귀포 시민 이춘희씨

한살림 활동을 하면서 도시우회도로 문제 접해

어릴 때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이 매우 중요

개발이 되지 않아야 사람들은 제주에 올 것

편리하게 만드는 게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최근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뉴스가 있다. 다름 아닌 제주가 좋아서 왔다는 이들이 다시 되돌아가는 U턴 현상에 대한 소식이다.

지난 16일이다. 호남지방통계청이 지난해 인구이동 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다. 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9만5000명이 제주로 들어오고, 9만2000명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특히 서울인 경우 제주에 들어온 인구보다는 제주를 벗어난 인구가 더 많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제주에 왔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두고 있는 이춘희씨. 그는 개발이 그런 문제 요인의 하나라고 진단한다.

“일상으로 꽉 찬 사람들, 건물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쉬러 제주에 오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개발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더 사람들을 오지 못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오히려 너무 발전하는 제주를 보고 떠나가는 사람도 있겠죠.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 가운데 아무래도 ‘제주 난개발’이 있지 않을까요.”

이춘희씨가 천지동놀이터에서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춘희씨가 천지동놀이터에서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고 있다. ⓒ미디어제주

그는 충남 홍성 출신이다. 홍성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에서 살았다. 그가 다니는 길은 비포장이었고, 주변은 논밭이었다.

“어릴 때는 그런 곳이 좋은 줄 몰랐어요. 커서는 서울에 살면서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는 게 힘들었어요. 서귀포로 온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서귀포는 어쩌면 그에게 어릴 때 고향 냄새를 안겨 준다. 서귀포가 마냥 좋았고, 여기서 결혼하고 아이 셋을 둔 엄마가 됐다. 여전히 서귀포는 좋다. 하지만 차츰 바뀌는 주변을 봐야만 한다. 그럴 때 속상하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새로운 도로가 뚫린다는 소식을 들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서귀포 지역의 한살림 활동을 하며 우회도로가 생긴다는 걸 접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밥상모임을 통해서 문제도 들여다보고, 한살림의 책읽기 모임인 ‘생각모임’에서도 도로 신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큰 도로를 꼭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회도로가 생긴다면 도로가 막히는 건 다소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큰 도로가 반드시 필요할까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왕복 6차선 도로이다. 서귀포 도심을 관통하는 4km가 넘는 도로이다. 그는 서귀포 시민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사업을 위한 사업’이라는 생각이다.

“일부의 편의 때문에 서귀포학생문화원 잔디 등이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 우려에 대한 공감을 하고 있어요.”

세 아이는 모두 어리다. 미취학 아동이어서 서귀포학생문화원을 자주 들르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10차례 정도 오가고 했다고 한다.

“잔디를 본 첫 느낌은 너무 좋았어요. 육지엔 그렇게 넓은 공간이 많지 않거든요. 잔디밭에 앉아서 또래들이 놀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죠.”

서귀포학생문화원은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리기에 바로 곁에 있는 천지동놀이터를 찾는다. 날만 궂지 않으면 아이 셋을 데리고 늘 오가는 곳이 천지동놀이터이다. 어쩌면 도시우회도로 개발은 천지동놀이터가 없어지는 것이랑 매한가지가 아닐까.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천지동놀이터 외에도 자연을 많이 찾는다. 나무가 있고, 새 소리가 들리는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풀을 만나고, 흙을 만지며 장난을 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지 않고 우리는 더 편리하기만 원하는데, (자연을 없애고) 더 편리한 건물을 들어서게 만드는 것이 과연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요.”

이춘희씨는 혼자였을 때는 혼자서 산책을 즐겨 했다. 이젠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이랑 산책을 즐긴다. 어릴 때 자연과 만나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가 아이들에게 자연을 말하면 아이들이 바로 반응할 때 매우 뿌듯해요. 바로 이게 중요하구나 느끼죠. 그만큼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어른들이 생각하는 개발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우회도로가 생긴다면 아이들의 기억 속엔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의 잔디는 없겠죠.”

그는 ‘도로 개설’은 ‘도심 변경’으로 생각한다. 도로 하나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제주에 첫발을 딛고 정착했을 때와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놔두지 않는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처음 서귀포에 왔을 때는 막 개발이 시작되는 단계였고, 그때가 좋았어요. 지금은 자주 가는 곳들이 바뀌어 있어요.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누구를 위한 편리인지 모르겠어요. 처음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야 제주도가 신기하게 보이겠지만 이젠 그러지 않다고 봐요. (개발된 곳에) 왜 사람이 오는지 모르겠어요. 개발이 되지 않아야 또 오지 않을까요.”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게 다 좋은 건 아니라고. 오히려 그런 편리가 사람을 제주에서 떠나게 만든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회도로가 생기면 낯설 것 같아요. 내가 알고 있는 게 또 변했구나 느끼겠죠. 마음이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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